정기섭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장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통일 대박'은 북한에 제2의 개성공단을 넘어 제3, 제4의 개성공단을 만들 수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개성공단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정부의 현실입니다."
정기섭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회장은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통일 대박론'의 허상을 지적하며 "개성공단 활성화 없이는 통일 대박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협회의 수석부회장을 맡아온 그는 최근 6대 협회장으로 추대됐으며, 한 달에 2번 개성공단을 오가며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가능하려면 지금 실무 행정부처에서 조금씩이라도 가능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하지만 관련 부처들의 행태를 보면 반대로 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통일부의 5.24 조치 해제 불가 방침이다. 정 회장은 "5.24 조치로 신규투자가 막히면서 1차 개성공단 분양 물량 100만평 중 60%를 놀리고 있다"며 "조치 해제에 대해 고민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근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제2 개성공단 논의도 5.24 조치 해제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제2 공단이 생기려면 투자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5.24 조치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5.24조치를 어느 수준까지 적용해 나갈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도 비판했다. 정 회장은 "최근 3통(통신ㆍ통행ㆍ통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인력난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개성공단 기숙사 설립이 무산되면서, 대다수의 기업들이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건물과 기계설비를 썩히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가 추산하는 부족 인원의 수는 2만명 정도다. 그는 기숙사를 정부가 지어주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지을 수 있도록 자금지원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개성공단이야말로 통일을 대비한 남북간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북한 노동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일하면서 우리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배워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무턱대고 임금 인상을 요구했던 북한 노동자들이 최근에는 '일정한 생산성과를 낼 테니 임금을 올려 달라'며 협상을 하기 시작한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성공단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개성공단에 큰 타격을 준 폐쇄사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체 가동률은 85%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일부 기업들은 가동률이 50%를 밑돌며 경영난을 겪고 있다. 폐쇄사태로 한 번 떠난 바이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다. 특히 전자ㆍIT기업들의 피해가 크다. 정 회장은 "한 부품기업은 기계를 돌리지 못하게 되자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공장에서 종이봉투 접는 일을 하고 있다"며 "경협보험금도 70%만 갚은 상태로, 갚지 못한 기업들은 연 9%의 연체이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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