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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않아(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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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6)


[千日野話]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않아(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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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업(別業)은 별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치수가 시작되는 이 자리가 내 공무(公務)의 성패가 달린 곳이며, 내가 관아처럼 근무해야 할 자리라는 뜻이다. 아까 말했듯 '복도'는 백성의 길을 다시 찾는 것이니, 민초들에겐 또한 이전과는 다른 성과를 얻는 별업(別業)이기도 하다. 내 뜻을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복도별업' 아래에 언문으로 '고을사람들이 물길을 다시 찾는 특별한 일터'라고 써놓을 것이다. 가뭄과 수해의 되풀이를 끊는 큰 역사(役事)의 시작이 되도록 해야 하리라."


두향이 소(沼)로 다가가 물을 한 줌 떠올린다. 가만히 입으로 흘려넣어 마신다. 깨끗한 단양천의 물맛이 달게 느껴진다. 서각쟁이는 벌써 일판을 벌이고 있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퇴계는 묵묵히 연못 둑 위를 거닐며 생각에 잠겨있다. 잊지 못할 오후의 한때이다(복도별업 각자서(刻字書)는 충북 지방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날 관아로 돌아가면서 두향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낸다.


"기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한시 중에 오매월류(梧梅月柳)라는 것이 있사옵니다. 칠언(七言)의 절구인데, 누가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사옵고 그냥 떠도는 것이옵니다. 혹시 나으리는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래. 나도 한양에 있을 때 어느 기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노라."


"아아, 그렇사옵니까? 제가 한번 불러보면 어떨지요?"


"좋다마다."


두향은 음색을 가다듬어 노래를 부른다.


"梧千年老恒藏曲(오천년로항장곡)이요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이요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라"


퇴계가 그 뜻을 가만히 풀며 음미한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그 속에 노래를 지니고 있고
매화는 평생 추위와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빛은 천 번 이지러져도 원래 모양은 남아있고
버드나무 줄기는 백 번 찢어내도 또 새로운 가지가 난다"


두향이 물었다. "오동나무가 노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오동나무는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악기를 만드는 목재가 아니더냐. 젊은 오동나무로도 악기를 만들 수 있지만 늙은 오동나무로도 여전히 만들 수 있으니 천년 묵은 오동나무도 그 속에 울림성 좋은 노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두향이 다시 물었다. "아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매화가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인지요?"


"그 꽃이 평생을 춥게 지낸다는 표현을 보렴. 매정(梅精ㆍ매화꽃의 정기)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시인이 읊은 것이지. 매정은 동짓날에 일점(一点)의 양기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더냐. 가장 추운 시절을 견디면서 이 꽃은 속으로 속으로 그 빛과 온기를 돋워 마침내 봄을 피워내지 않더냐. 봄이 와서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라, 매화가 피면서 봄을 밀어올리는 것을 우린 알고 있지. 어떤 꽃들은 생명이 위태로우면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자신은 죽어버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더냐. 하지만 매화는 절대로 그런 법이 없어. 추위 자체가 삶의 환경 전부라 할 수 있어. 춥다고 서둘러 향기를 내어 나비나 벌을 유혹할 생각이 없지. 끝까지 제 봄을 만들어 피워올리니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였을 것이니라."


"나으리의 설명을 들으니 눈앞이 환해지는 듯합니다. 그럼, 달빛이 이지러지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달이 이지러져도 본질은 남아있다는 것은, 현재의 슬픔에 낙망하지 말라는 뜻을 품고 있지. 크고 아름답던 달이 반달이 되고 그믐달이 되어 밤하늘을 캄캄하게 할 때, 우린 그걸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절망하여 일을 그르치기가 쉽단다. 그믐달은 곧 초승달이 되지 않더냐. 달의 크고 작음은 순환하는 것이기에 기다리면 다시 커지는 게 당연한 법. 하지만 이 시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달이 이지러졌을 때 그 안에 보름달이 있음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지. 그래서 시가 멋이 있구나. 보름달이 달의 본질이니 눈에 닥친 현상만으로 판단하여 본질을 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란 이야기일세."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연못은 '복도소'라 불렀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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