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10대 재벌그룹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올해도 약속한 듯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정기 주주총회를 연다고 한다. 주총을 한날한시에 하면서 주주들이 인터넷으로 표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전자투표제 이용은 외면하고 있다. 주총일에 특별한 길일이 있을 수 없다. 사실상 주총 개최일 담합이다. 주주들, 특히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무력화하는 구태다. 주주 중시 경영, 투명경영에 반하는 몰염치한 행태다.
어제까지 주총 날짜를 공시한 10대 그룹의 12월 결산 상장사 35곳 중 88.6%인 31곳이 다음 달 14일 오전으로 주총일을 잡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 12곳은 이날 오전 9시, 동시에 주총을 연다. 현대차와 LG그룹 계열사 대부분도 3월14일이 '주총 데이'다. 아직 계열사 주총일을 공시하지 않은 롯데,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등의 여러 계열사도 같은 날 주총을 열 것으로 전해졌다.
주총을 같은 날 여는 이유는 뻔하다.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라도 주총 참석은 한 곳밖에 할 수 없다. 골치 아픈 소액주주나 외부 대주주들의 참석을 막아 오너 대주주와 경영진 뜻대로 주총을 진행하기 위한 꼼수다. 주총 2주 전에 의안을 받아 5일 전까지 의결권 행사 내용을 공시해야 하는 기관들도 불만이다. 몰아치기 주총의 경우 수많은 의안을 분석할 시간 여유가 없다. 주주 행사권을 막는 부당한 행위다.
정부는 이 같은 폐해를 없애기 위해 2010년 주총에 참석하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올해 전자투표 이용 기업이 한 곳도 없는 등 유명무실하다. 의무가 아닌 권유사항이라서 기업들이 외면하는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총일 담합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면서도 대응은 소극적이다.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도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의무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개정안 처리를 서두르기 바란다. 대기업들도 주주 중시 경영, 투명경영 실천 차원에서라도 주총 담합과 같은 잘못된 행태는 버릴 때가 됐다. 법이나 행정 규제로 강제하기 이전에 스스로 주총 날짜를 분산하는 게 바람직한 기업의 자세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