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과 연·기금이 이들 자산 인수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이나 부채 감축 과정에서 자산 매각이 필요한 경우 공공기관의 자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취득한 것이기 때문에 제 값을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에 원활한 참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서 시장의 매수 여력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공공기관 자산을 사들일 여력이 있는 민간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많지 않다. 중견·중소기업이 대규모 자산을 매입한다 해도 활용처를 찾는 방안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대기업이 공기업 자산 인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만들라고 주문한 것이다.
공정위와 금융위 업무보고에도 이같은 방안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일정요건을 충족하는 대기업집단 소속 사모투자전문회사(PEF)에 대해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을 면제하는 방안을 금융위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산분리를 일정 부문 완화하는 방안으로, 대기업에 쌓여있는 대규모 유보금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복안이 담겨있는 정책이다.
금융위도 '영업양수도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PEF 운용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PEF는 기업의 지분 증권만 인수 할 수 있다. PEF가 기업의 특정 사업 부분만 사고 팔 수 있도록 해 PEF가 인수합병(M&A)에 참여하는데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PEF가 영업양수도를 위해 상법상 일반회사를 세우는 것이 허용되면 대기업이 투자자로 나설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2년 기준 390조1000억원에 이른다. 대기업들이 이 자금을 공공기관 자산 매입에 사용한다면 공기업 부채 관리를 위한 자산 매각이 한결 수월해 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정부는 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공공기관 자산 인수 가능성도 열어뒀다. 김상규 기재부 재정업무관리관은 "공공기관 자산 매각을 위해 캠코 등도 활용하고,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 back)과 같은 금융기업도 활용할 것"이라면서 "국민연금 등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공공기관 자산 매입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연·기금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공공기관 자산의 헐값 매각을 막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초 18개 부채 감축 공공기관들은 정상화 대책으로 7조4000억원의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화 계획 이행은 2017년까지로, 자산 매각도 이전에 완료해야 한다. 매각 시점이 제한돼 있다는 점은 자산 가치의 평가절하 요인이 된다. 때문에 연·기금을 경쟁자로 끌어들여 공공기관 자산의 평가 절하를 막겠다는 것이다.
다만 연·기금이 정부의 의중에 따라 공공기관 자산 인수에 뛰어든다면 국민의 노후 자금으로 공공기관 빚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 수 있다. 때문에 연·기금의 공공기관 자산 인수 참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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