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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두향의 매화를 보고 가슴 뛰는 퇴계(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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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34)

[千日野話]두향의 매화를 보고 가슴 뛰는 퇴계(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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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 한 송이로는 사또의 눈을 잡기 어려울텐데..."


그말에 두향이 괜히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사또 나으리는 매화 향기를 맡으시는데 아주 예민하셔서 한 송이에서 백 송이 향기를 다 느끼신다네."


노복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그렇다고? 콧구멍이 커야 하겠네."


"네, 이 노옴. 지엄하신 사또의 존안(尊顔)을 함부로 말하다니..."


"알았어, 알았어. 그냥 입 다물고 옮기기나 할게."


그런데 사또는 낀내(介川) 바닥에 소(沼,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살피느라 출타하고 없었다.


퇴계는 치수사업을 살피고 오는 길에 들못(野池) 옆에 앉았는데 문득 시흥이 일어 한 수 읊었다.


노초요요요벽파(露草夭夭繞碧坡)하니
이슬 맞은 풀잎들 푸른 둑을 둘러싼 채 한들한들
소당청활정무사(小塘淸活淨無沙)로다
작은 연못 맑고 널찍해 티끌없이 깨끗하구나
운비조과원상관(雲飛鳥過元相管)이건만
구름이 날고 새가 지나는 건 원래 서로의 자리가 다르지만
지공시시연축파(只恐時時燕蹴波)라네
다만 때때로 제비가 물결을 차는 것이 걱정이라네


고요하고 맑은 연못의 수면을 바라보며 퇴계는 사람의 마음도 저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못 위로 구름이 날아가도 수면은 흔들리는 법이 없다. 또 새가 날아가도 마찬가지다. 구름과 새의 길은 허공이고, 물은 땅에 귀속된 것이기에 함께 있어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득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물바닥을 차고 간다.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이 일어난다. 벼슬에서 벗어나 한적한 삶을 원하는 지금, 자신은 물의 수면같은 것이고 조정은 저 허공같은 것이다. 서로의 영역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공존의 평화를 꿈꾸지만, 문득 저 제비같은 존재가 날아와 평지풍파를 일으킬까 늘 걱정이다. 그런 마음이 우선 담겼으리라. 물론 저 시는 세상과 삶의 변화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물이 허공의 구름과 새를 비추는 것처럼,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는 도학적 태도를 연못의 비유로 담고싶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구름이 지나고 일천마리의 철새 떼가 날아가도, 연못은 다만 그것을 가만히 비출 뿐 스스로가 격동하지 않는다. 세상사에 대한 이런 냉철이야 말로 학문하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경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관아로 돌아와 내당으로 드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걸상 모양의 매화등 위에 놓인 도수매 화분.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매화의 송이들이 벌써 욕방매(欲放梅, 막 매화를 돋아올리려는 기색을 띰, 두보의 시에 나오는 구절)의 시구절 그대로다. 그 중에 깊이 늘어진 한 가지에 흰 매화가 청초하게 벙글었다. 화분 앞에서 퇴계는 입을 벌린 채 다물줄을 모른다.


"아까, 두향이 다녀갔사옵니다."


하인이 전해준다.


"그랬구나. 올해는 겨울이 유난히 길다 하였는데, 벌써 봄이 왔구나. 두향에게 일러라. 저녁에 가벼운 술자리를 갖고 싶구나."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퇴계는 생각했다. 저 매화가 피기를 기다린 사람을. 자신 또한 그런 마음을 한 시도 놓을 수 없었지만, 두향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꽃이 피는 것이 사람이 정하는 기약과는 달라 몇날 몇시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일찍 피어도 조바심이고 늦게 피어도 조바심이 아니겠는가. 꽃이 피었는데도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낭패이고, 사람의 뜻보다 꽃이 지각해도 그것 또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핸 추위가 만만찮은지라, 춘신(春信)이 다소 늦어지고 있었기에 문득 닥친 매화 소식이 뜻밖처럼 놀랍다.


내당에 조촐히 차린 저녁 술상.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유난히 발그레한 두향의 얼굴. 그녀는 거문고를 들어 퇴계가 최근에 지은 마상시(馬上詩)를 읊는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사흘 사랑하고 천일을 그리워하리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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