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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갈 길 먼 신용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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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갈 길 먼 신용사회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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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신용이다.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쇄된 '종이조각'에 불과한 지폐를 받고 고가의 물건을 내주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그 종이조각이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지폐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돈이라고 '믿는 데서' 비로소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쓴 '돈의 이야기'를 보면 필리핀 동남쪽 서태평양에 위치한 야프(Yap) 섬 이야기가 등장한다. 야프섬 주민들은 큰 돌에 멧돌처럼 구멍을 뚫은 페이(fei)를 돈으로 사용한다. 그 페이는 직경이 무려 4m가 넘을 정도로 크고 무겁기 때문에 이동하기 어려워 집 앞에 놓고 소유주를 표시하였다. 그나마 페이는 큰 돌을 구하기 어려운 야프섬에서 희소가치라도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인쇄된 종이조각을 '돈'으로 믿고 진지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야프섬 주민들 눈에는 거꾸로 우리가 이상한 사람들로 비칠지도 모른다.

주목할 점은 금융과 관련된 신용은 절대로 자연발생적으로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데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비로소 신용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생기는 것이다. 가령 정부가 수십 년간의 진지한 노력으로 물가를 안정시키지 않으면 '돈'은 문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면 '망명정부의 지폐'인 낙엽처럼 그 가치가 산산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금융사고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금융의 본질이 신용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신용관리에 너무나 안이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초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이다. 금융기관을 믿고 순순히 모든 개인정보를 알려줬는데 금융기관들은 그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한 셈이 되었다. 금융기관을 통해 줄줄이 새나간 내 개인정보가 어떻게 악용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내 주민번호와 계좌번호, 주소를 알면 사이버 상에서 나도 모르는 나의 '아바타'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수수료 수익 좀 챙기자고 자기네들도 잘 모르는 위험한 금융상품을 일반인이나 중소기업들에게 판매해 큰 손해를 입힌 사건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난해 말에는 동양증권의 사기성 기업어음(CP) 판매 중개사건까지 터졌다. 그뿐인가. 여러 은행이 5년 동안 수천억원을 대출해 줬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은 사건도 은행이 금융의 본질인 신용의 가치를 지키려는 치열한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기업은 매출채권 조작을 방지하기 위하여 전자상거래로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개인이 제출한 가짜 세금계산서 하나만 믿고 거액을 대출해 주었으니 신용위기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신용위기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금융산업의 후퇴를 초래한다. 또 경제 전체의 비효율과 위축으로 이어진다. 가령 이번 사건의 여파로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팩토링 성격의 금융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진성 매출채권은 물론 세탁소나 양복점, 라면가게 등도 '미래에 발생할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형태의 소호대출이 소기업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소호대출이 활성화된다면 경제의 모세혈관 생성에 큰 도움이 될텐데 우리나라는 동맥 부분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으니 경제의 모세혈관은 시작되기도 전에 막힌 셈이 되었다.


신용이라는 자산은 쌓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잃기는 쉬운데 되찾기는 몇 배 더 어렵다. 금융기관들은 과거 몇 년 동안 자신들의 부주의로 날려버린 신용과 믿음을 되찾는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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