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Born to Run (본 투 런)'에 멕시코의 타마우마라족 얘기가 나온다. 이 부족은 장거리 달리기에 능한데 어릴 때부터 툭하면 20~30km를 뛰어 옆집 심부름을 다닌다. 19세기 말에는 달리다가 미국 남부까지 흘러들어온 타마우마라족을 곧잘 발견했다고 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는 멕시코 정부가 마라톤에 타마우마라족을 출전시켰는데 정작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이들이 워밍업하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려는데 경기가 끝나버린 것이다.
이 책에는 타마우마라족과 미국 마라톤 선수들이 겨루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경기에 참가한 스콧 쥬렉도 그 후 'Eat & Run 호모 러너스'라는 책을 써냈다. 쥬렉은 세계 최고의 울트라마라토너로 24시간에 266.6 km를 달린 기록을 갖고 있다. 하루 동안 풀마라톤 여섯 번, 하프 한 번 뛴 것이다. 타임지 인터뷰에서 마라톤 하나 뛰는 건 식은죽 먹기 아니냐고 묻자 쥬렉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울트라마라토너는 가끔 마라톤보다 5km를 뛰는 게 더 힘겹다고 한다.
유학 가자마자 애를 가졌다. 주변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데 출산을 앞둔 나를 두고 안쓰러운지 "애 낳는 건 아무것도 아냐, 키우는 게 더 힘들지" "아파도 금방 잊어, 그러니 둘째도 낳지" 등 격려해줬다. 막상 예정일이 다가오니 정말 궁금한 것이 실제 고통의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고통인지 또 얼마나 아픈지 얘기해줘야 대비할 텐데 주변에서는 여전히 애 낳는 거 별 거 아니다, 잘 넘어갈 거다 등 좋은 말만 해주었다.
그때 유일하게 다른 얘길 해준 선배가 있었다. 애 낳는 것은 참을성 많은 자기도 상당히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통 간격 때마다 이게 언제 끝나나 하지 말고 다음엔 더 심한 고통이 오는구나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했다. 선배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진통이 규칙적으로 시작되어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애가 나왔다. 애가 나왔는 데도 나는 여전히 그 선배의 말대로 더 큰 진통이 올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가 스르르 나온 것도 모른 채.
작년 이맘때 치아교정을 시작했다. 원래 앞니 때문에 상담받다가 의사가 들쭉날쭉한 아랫니를 먼저 고쳐야된다고 해서 아랫니부터 시작했다. 7~8개월 걸린다면서 추석 쯤엔 끝나지 않겠냐 했다. 추석은커녕 지금도 아랫니에 교정기를 끼고 있고 며칠 전에야 윗니를 시작했다. 다시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니 "글쎄요, 추석까진 해야겠죠" 그랬다. 급기야 앞니 교정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꼭 기간이 늘어서만이 아니라 교정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교정으로 생길 수 있는 힘든 점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 준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2~3년 걸릴 거라 하고 실제 어떤 불편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더라면 포기할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는 리더십 경영에서 회자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가 많다.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이 패러독스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포로였던 스톡데일 장군의 일화에 바탕한 것이다. 전쟁포로 중 크리스마스가 오면 나가겠지 하고 막연히 기대하던 낙관주의자들은 버티지 못한 반면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못 나갈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한 현실주의자들은 살아남은 것이다.
새해 결심이 결실을 맺으려면 그 흔한 작심삼일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직시해야겠다. 365일이라는 울트라마라톤에서 삼일이라는 5km를 제대로 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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