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골프경기에서의 '조 편성'은 공평한 것일까.
프로대회의 경우 선수들은 보통 오전과 오후 조로 나누고, 1, 2라운드에서 1번홀과 10번홀을 서로 바꾸는 티타임을 구성한다.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컨디션이나 기상여건 등 경기외적인 요소를 최소화시킨다는 취지다. 3라운드부터는 당연히 성적에 따라 시간을 배정한다.
하지만 대자연과의 싸움이라는 특성상 그래도 운이 크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첫날은 오전에, 둘째 날은 다시 오후에만 악천후가 이어져 특정한 선수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경우다. 주최 측의 의도적인 배려도 가능하다.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의 올 시즌 첫 맞대결로 화제가 됐던 두바이데저트클래식이 대표적이다. 지난 2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에미리트골프장(파72)에서 스티븐 갤러허의 2연패로 막을 내린 무대다.
바로 우즈-매킬로이 조와 헨리크 스텐손의 대조적인 1라운드 출발시간표다. 우즈와 매킬로이는 10번홀(파5)에서 대장정에 돌입했다. 두 선수의 유명세를 감안하면 사실 10번홀 출발은 이례적이다. 아마추어대회에서도 호스트나 VIP들은 통상 1번홀에서 출발시키는 게 관례다. 그야말로 무례한(?) 티타임인 셈이다. 두 선수에게는 그러나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후반 9개 홀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첫날 오전에 페어웨이가 넓은 후반 코스에서 편안하게 워밍업을 시작한 뒤 난이도가 높은 후반 9개 홀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매킬로이는 실제 전반에 실전 샷 감각을 조율하며 차분하게 5개의 버디를 솎아냈고, 결국 9언더파를 몰아치는 초반 스퍼트를 완성했다. 스텐손은 반면 1번홀(파4)에서 출발해 5번홀(파4)까지 3개의 보기를 쏟아내며 가시밭길을 걸었다.
또 다른 대진운도 악영향을 미쳤다. 동반플레이어다. 우즈와 매킬로이, 디펜딩챔프 갤러허가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치는 동안 스텐손은 어니 엘스, 토마스 비욘 등 노장들과 지루한 경기를 펼쳤다. 매킬로이의 9언더파에 이어 갤러허 6언더파, 우즈가 4언더파를 작성한 반면 스텐손의 파트너들은 비욘이 이븐파, 엘스 2오버파 등 거의 매홀 위기를 맞아 플레이가 늘어졌다. 스텐손의 리듬과 템포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록상으로도 나타났다. 매킬로이 63-70-69-74, 우즈 68-70-73-71 등 두 선수 모두 첫날 스코어가 베스트가 됐다. 우연의 일치로만 치부하기에는 미묘한 대목이다. 스텐손은 최종일 4언더파를 치며 분전했지만 이미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무명의 설움은 아니다. 스텐손 역시 지난해 미국과 유럽의 양대리그 플레이오프를 모두 제패하며 세계랭킹 3위로 치솟은 월드스타다. 그저 불운이다.
스텐손에게는 그러나 올해 캘러웨이와 새로 골프용품 계약을 맺어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해졌다. 이 대회 직후 두문불출하며 연습에 매진한 이유다. 이런 스텐손이 3주 만인 19일 밤(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마라나 도브마운틴 더골프클럽에서 열리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시리즈 액센추어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두바이에서의 불운은 과연 약(藥)이 됐을까. 독(毒)이 됐을까.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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