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마케팅 마이오피아(marketing myopia)'.
말 그대로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른바 근시안적인 마케팅이다. 요즈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마케팅 행태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불황이 거듭되면서 스폰서가 급격히 줄어들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염불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마케팅이 오히려 역효과를 빚는 모양새다.
16일(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마스터스골프장(파71ㆍ6428야드)에서 끝난 에비앙챔피언십(총상금 325만 달러)이 대표적인 사례다. LPGA투어는 폭우로 1라운드가 취소되자 "16일 3, 4라운드를 한꺼번에 치르겠다"고 발표했다가 15일 기상대의 비 예보를 이유로 서둘러 54홀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마이크 완 LPGA투어 커미셔너는 "악천후 때문에 기간을 연장해도 72홀 플레이를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그러나 "LPGA의 성급한 결정'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브리티시여자오픈 챔프' 스테이스 루이스(미국)는 특히 "2라운드 직후 '컷 오프'를 50명으로 줄이면 3, 4라운드를 충분히 치를 수 있다"며 "코스 상태는 나쁘겠지만 이는 선수들이 메이저우승을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회가 올해부터 다섯 번째 메이저로 승격됐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이 있는 대목이다. 메이저는 물론 대부분의 빅 매치들은 악천후에 대비해 예비일을 두고, 최대한 4라운드까지 소화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당연히 선수들의 공정한 우승 경쟁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선수들의 다음 일정도 중요하지만 LPGA투어가 이 대회 직후 아예 2주일간 휴식기라는 점에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LPGA투어는 2007년 한국에서 열린 하나은행ㆍ코오롱챔피언십 당시에도 최종 3라운드에서 강풍을 이유로 조기에 대회를 종료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때도 처음에는 "일단 경기를 속개하고, 일몰이 되면 다음날 잔여 경기를 한다"는 방침이었다. 바람이 강했지만 대회를 중단할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회가 늘어지면 외국선수들이 곤란했다. 다음 대회인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LPGA타일랜드에 출전하기 위해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LPGA가 "외국선수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까닭이다. LPGA는 그러자 "강풍에 의한 그린 손상으로 코스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골프장 측에 책임을 전가했다. 이관형 마우나오션골프장 마케팅본부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발끈했다.
에비앙챔피언십은 사실 '메이저 승격' 자체부터 무리수였다. LPGA 입장에서는 총상금 325만 달러짜리 빅 매치를 개최하는 스폰서의 요구에 부응해 5대 메이저라는 기형적인 시스템을 만들었겠지만 5개 가운데 4개만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이라는 해석은 '싹쓸이와 연속'이라는 그랜드슬램의 정의를 모두 무시했다. 역사를 부정하는, 그러면서도 정작 대회 완성도를 높이는데 소홀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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