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국내 남자 프로골퍼들의 '엑소더스 현상'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아시안(APGA)투어 사무국은 9일부터 태국에서 열리는 퀄리파잉(Q)스쿨 예선전에 한국선수 121명이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일본(129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지난 연말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Q스쿨에 무려 100여명이 응시해 화제가 됐지만 상금 규모가 적은 APGA투어에 나가려고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태국으로 건너간 건 이채다.
바로 한국프로골프투어(KGT)의 고사 위기 때문이다. 지난해 KGT시드로 온전하게 출전할 수 있었던 대회는 5개(해외투어 공동주관 제외)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활약하는 김비오(22ㆍ넥슨)가 3개 대회에 참가하고서도 상금왕에 등극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상금규모도 열악했다. 1억원 이상 벌어들인 국내파 선수는 13명,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33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미니투어 수준으로 전락한 국내 무대를 하루 빨리 떠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일본이라는 더 큰 무대는 물론 APGA투어 시드라도 확보해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마련해야 '청년백수'를 벗어날 수 있는 절박한 처지인 셈이다. APGA투어는 규모가 작아 예전에는 겨울철 동계훈련을 겸해서야 서너 차례 출전했던 곳이었다.
2006년 이후 20개에 육박하는 대회를 치르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KGT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밥그릇 싸움'이 진원지다. 2011년 박삼구 회장(68)이 퇴임한 이후 지난해 이명하 회장(56) 선출과 전윤철 전 감사원장(74) 추대, 소송을 통한 직무 정지, 김학서 부회장(66)의 회장 직무대행, 또 다시 직무정지로 이어지는 추악한 권력 다툼이 반복됐다.
올해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여곡절 끝에 황성하 회장(52)이 취임했지만 부정선거 의혹 등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황 회장은 더욱이 "반목과 갈등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발전하는 KPGA를 만들겠다"던 말과 달리 취임 직후 일부 사무국 직원에게 '반대파'란 낙인을 찍어 일방적으로 해고했고, 13명의 회원까지 제명하는 중징계까지 곁들여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기업들이 '사고단체'라는 인식 하에 KGT 대회 주최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까닭이다. SBS는 실제 올해 골프대회 관련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지원을 받았던 KPGA선수권과 윈저클래식은 당장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APGA투어로 진행됐던 볼빅오픈은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원아시아투어로 열리던 하이원리조트오픈은 아예 여자대회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KPGA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시점이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프로골프협회를 새로 만들던지, 아니면 KGT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면 황 회장을 비롯한 신임 집행부로서는 마지막 선택뿐이다. 파벌싸움을 중단하고 인재들을 끌어 모아 새로운 위상 정립과 흥행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전개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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