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연두 국정연설에서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39% 인상하는 입법조치를 취해줄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이와 별도로 자신은 연방정부의 하청ㆍ납품업체들에 시간당 10.10달러 이상 임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수주일 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임금인상은 기업의 고객들이 지출할 수 있는 돈을 더 많이 갖게 해준다. 이에는 어떤 관료적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모두 동참해주길 바란다. 미국인 모두가 임금인상의 혜택을 누리게 해달라."
그는 국정연설을 마친 뒤 유통업체 코스트코의 매장을 방문했다. 코스트코를 모범사례로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코스트코는 창업자가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회사이기도 하지만, 경쟁업체들에 비해 임원 보수는 짜게 책정하고 직원 월급은 후하게 주면서도 고속성장을 해온 기업으로 유명하다. 코스트코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20.89달러로 경쟁업체 월마트의 12.67달러보다 65% 더 높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재작년 말 집권한 뒤로 디플레이션 탈출 대책의 하나로 기업계에 임금인상에 나서달라고 촉구해왔다. 지난해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일본 기업계가 올해 들어서는 달라졌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등 대표적인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호응하고 있다.
요네쿠라 히로마사 경단련 회장은 지난달 28일 '경단련 노사포럼'에서 임금인상과 관련해 "경제 선순환 실현은 중요하다"며 "각 사가 자사 상황에 맞는 답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세가와 야스치카 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이달 3일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개인소비를 자극하기 위해서도 임금인상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연합)가 올해 임금협상(춘투)을 앞두고 5년만에 기본급을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베이스 업'을 요구하는 것이 대한 화답이다.
미국과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는 물론 오바마와 아베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오바마는 소득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워 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도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아베는 기업계에 법인세율 인하라는 당근을 주는 대신 인금인상에 나서도록 유도해 소비세율 인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완화해보려고 한다. 어쨌든 국가 지도자가 나서서 기업계에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두 나라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미국과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임금인상의 긍정적 파급효과가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간 우리나라 노동자 임금은 실질치 기준으로 오르기는커녕 제자리걸음 내지 약간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기간에 가계부채는 급증해 1000조원에 이르러 소비지출을 억제하는 정도를 넘어 저축률까지 떨어뜨렸다. 이와 동시에 기업저축이 늘어나면서 노동소득분배율이 점점 더 낮아졌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지 않고서는 경제 전체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기가 어렵다.
수출과 내수의 상승적 균형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면 가계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임금의 전반적 인상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문이다. 임금은 노동으로 살아가는 국민 대부분의 생존과 인간적 삶을 떠받치는 토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생산비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중요한 내수원천이다. 비용절감을 위한 기업들의 임금억제가 경제 전체에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 발상전환이 있어야 이런 구성의 오류를 깨뜨릴 수 있다. 여유 있는 대기업부터 과다한 이익 내부유보를 줄이고 투자확대와 함께 임금인상에 나서게 할 유인체계를 생각해봄직하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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