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이케다 세이고(54·일본) 피지컬 코치다. 철저한 분석과 선수들의 몸 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체력훈련으로 대표팀의 경기력을 향상시킨 인물이다. 동메달이 걸린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정보통 역할도 해냈다. 당시 감독은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세이고 코치와 홍 감독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J리그 벨마레 히라쓰가(현 쇼난 벨마레)에서 뛰었던 홍 감독은 지인의 소개로 세이고 코치를 처음 만났다. 브라질, 이탈리아 등 축구 선진국에서 트레이닝 기법을 익힌 세이고 코치는 단숨에 홍 감독을 사로잡았다. 홍 감독은 “나중에 감독이 되면 나를 꼭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농담처럼 던진 이 말은 2009년 7월 현실이 됐다. 세이고 코치는 홍 감독이 20세 이하(U-20) 대표팀을 맡으면서 피지컬 트레이너로 합류했다. 홍 감독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당시 세이고가 코치로 일하던 우라와 레즈에서 그의 한국행을 반대하자 구단을 찾아 사장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에 일본인 코치를 끌어들였다는 일부 국내 팬들의 비난도 묵묵히 이겨냈다. 두 사람은 그 해 10월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8강 진출을 합작했다.
세이고 코치는 지금도 대표팀에서 홍 감독을 돕고 있다. 그는 팀의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적을 불문하고 손을 내미는 홍 감독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홍 감독의 리더십은 ‘인사가 만사’라는 팀 운영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홍명보 팀’에 이방인이 또 한 명 합류했다.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안톤 두 샤트니에(56) 코치가 9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유럽 축구, 특히 조별리그 상대인 러시아와 벨기에 사정에 밝은 인물이다. 그의 임무는 유럽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브라질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상대 팀을 분석하는 일이다. 1993년 FC위트레흐트 유소년 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두 샤트니에 코치는 FC암스테르담, FC엘린크위지크, FC고작켄보이스 등 네덜란드 1부 리그 팀에서 감독으로 일했다. 2012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FC안지마하치칼라(러시아)에서 거스 히딩크(68·네덜란드) 감독을 보좌하기도 했다.
홍 감독은 지난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안지에서 연수를 하며 두 샤트니에 코치를 알게 됐다. 당시 홍 감독은 이메일로 그에게 한국 선수들을 점검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두 샤트니에 코치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뛰어난 분석 능력을 확신한 홍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자 정식으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두 샤트니에 코치는 ‘뜻밖이었지만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두 샤트니에 코치는 “러시아는 경험이 많고 체력이 강하며 벨기에도 유럽 예선에서 좋은 경기를 했다”면서도 “주축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한 데 뭉치기만 하면 둘 다 이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박지성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박지성을 만나보겠다는 홍 감독을 지원하는 말이었다.
축구대표팀에는 홍명보 감독을 중심으로 일본과 네덜란드의 전문가로 이뤄진 다국적 스태프가 포진했다. 홍 감독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왔다. 그가 걸어온 길은 사람이 중심이라는 그의 지도 철학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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