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세 치 혀는 실로 오묘하다. 굴리기에 따라 행복과 죽음을 낳는다. 세 치 혀가 만드는 한 마디 말은 천냥 빚을 갚기도 했고 설화를 낳아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세 치 혀를 놀리던 책사들이 요참행을 당해 강물을 진한 피로 물들이고 죽은 예는 역사에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해가 바뀌었다고 많은 말들이 나돌았다. '청마의 해'를 비롯한 덕담이 오갔다. 너나 할 것이 없이 같은 말을 내뱉는 까닭인지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새해 시무식 날 수습 기자 한 명이 내뱉은 말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취직시험의 '번뇌'에서 입사의 '열반'에 들었다는 소감이 그것이었다. 취직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쉽게 입에 올리기 힘든 '번뇌'를 말하며, 얼마나 기뻤으면 '열반'을 얘기했을까? 대졸자와 취업재수생을 양산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 번뇌가 아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실 번뇌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린 것은 그 수습기자 때문이 아니라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의 글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 사퇴하면서 남긴 편지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 국민행복 외에 모든 것을 번뇌로 생각하시는 지도자이시다"고 적었다.
"국민 행복 외의 모든 것은 번뇌"라는 글귀는 박근혜 대통령의 특산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 대통령은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말을 했다.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불교 지도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불교에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생각 외에 전부 번뇌로 규정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면서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하는데 나도 그것을 본으로 삼아 국민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모두 번뇌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5일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도 거듭 말했다.
박 대통령의 개인사나 정치이력을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이 말이 신선했던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간은 결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야당권과 대통령 선거에서 반대표를 던진 많은 유권자들은 여전히 "소통이 안 되는 불통 대통령","수첩공주"라는 등의 말로 비판을 하면서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언론계의 한 선배는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국민행복 외에는 모든 것이 번뇌"라는 그 말 한마디로 박 대통령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노라고. 먼저 이 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널리 알렸더라면 독기 서리고 가시 돋힌 비판보다 수백만배의 지지효과를 거뒀을 것이라고 말이다. 뛰어난 책사가 대통령의 옆에 있지 않고서야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때문에 실천으로 발언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게 더욱 더 중요해졌다. 바로 취직을 열반으로 생각하는 수습기자처럼 국민을 행복의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미개오(轉迷開悟)'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말은 대학신문이 전국의 대학 교수들을 상대로 조사해 선정한 갑오년 한 해를 대표할 사자성어다.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른다는 불교용어라고 한다. 박 대통령 역시 6일 기자회견에서 이 말의 뜻을 풀이했다. '전미개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국 CCTV 기자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원래 그 뜻은 욕심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미혹된 마음에서 깨어나 사물의 실제 모습을 바로 보자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저도 사심없이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어떻게 번뇌에서 벗어나느냐다. 각론이 없어 아쉽다고 비판론자들은 꼬투리를 잡는다. 맞다. 그래서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할 대목이다.
박희준 국제부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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