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오염되고 권력에 중독된 언어들...말귀 못알아듣는 불통민국을 들여다보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오늘날 '민주(民主)'라는 말의 용례는 다양(?)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의와는 별개로 우리는 '민주, 민주화, 민주주의'라는 말을 갈등과 대립의 현장에서 자주 접한다. 근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해석을 두고 한국사 교과서 역사논란이 일어났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도 그 의미와 실체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최근에는 보수성향의 사이트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상을 괴롭히거나 억압한다는 뜻으로 '민주화시키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비단 '민주'라는 말에만 국한된 사례는 아니다. 같은 말에서 출발했지만 사회구성원들의 '이해(理解)'와 '이해(利害)'가 얽히고설키면서 갈등이 불거졌던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로 '진보'와 '보수'라는 말도 명확한 정의도 없이 끊임없이 이념논란에 휩쓸렸다. 말이 오해를 낳고, 오해가 갈등을, 갈등이 분열을 낳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소통지수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영일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의가 없는 말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산업화가 뭔지, 민주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정의가 다 다르다"며 "사회적인 컨센서스가 약한 말들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공격하는 말 싸움이 난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4 갑오년은 '말의 해'이다. 아시아경제신문은 '말(馬)의 해'를 '말(言)의 해'로 바꾸어보려 한다. 예부터 말은 멀리 떨어진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좁혀주던 동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급한 공무나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으로 파발마가 사용되기도 했다. 공간과 공간을 좁혀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소통의 도구라는 점에서 말(馬)과 말(言)은 닮아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말(馬)의 해'에 '말(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말의 해에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현재 우리는 많은 말들이 흘러넘치면서도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풍요 속 빈곤'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 불통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말을 살리는 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 사회가 사용하고 있는 말의 정확성, 적확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올 한해 유독 자주 언론에 오르내렸던 '종북(從北)'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종북'은 냉전시대적 용어로, '북한을 추종하는 행위나 그 세력을 뜻하는 말'을 뜻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정원 대선 댓글사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종교계의 대통령 퇴진 요구 등의 사건과 맞물려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종북'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앞서 지적한 '민주화', '진보', '보수'뿐만 아니라 '민영화', '북방한계선(NLL)' 등의 말조차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돼 갈등의 단초가 됐다. 의회를 뜻하는 단어 'Parliament'가 프랑스어 'Parler'(말하다)에서 출발했듯 말은 정치인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말에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이 이처럼 빈약한 언어로 무장한 채 건정한 비판과 토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당신이 한 게 뭐가 있어", "죽기 싫으면 (제품) 받아" 등 2013년 5월에 공개된 남양유업 본사 영업사원과 대리점 주인의 통화내역은 말 속에 드러난 권력관계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비행기 안에서 한 대기업 임원이 라면을 끓여 주지 않는다며 여승무원에게 폭언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한 갑의 욕설과 폭언은 '갑을공화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줬다. 국민들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판결문이나 공문서를 딱딱하고 해독하기 어렵게 만든 것 역시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갑을관계의 한 단면이다. 이런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갑의 말과 반대로 을의 말은 문법에도 맞지 않는 극존칭으로 대변된다. "커피 한 잔 나오셨습니다" 등과 같이 사물에도 존댓말을 붙이는 이런 세태는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등장한 "○○하고 가실게요"를 시대의 유행어로 만들었다.
인터넷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댓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실체없는 괴담 등은 소통이 되지 않는 말의 일방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인터넷 시대로 진입하면서 양방향 소통의 장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역기능이 심상찮게 발생하고 있다. 국정원의 댓글을 이용한 대선개입 의혹은 인터넷이 여론통제나 조작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확한 사실과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채 SNS 등 네트워크를 통해 삽시간에 확산되는 루머나 괴담도 그 폐해가 적지 않다.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마비시키기까지 한다. 최근 여성 연예인 수십명이 연루된 성매매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건과 무관한 연예인들의 실명이 언급되면서 많은 피해자를 낳기도 했다.
캐나다의 사회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마샬 맥루한은 인간은 소통의 동물이고, 점점 진보하는 기술이 소통에 일대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석학이자 도미니크 볼통의 의견은 다르다. 그는 "안타깝게도 기술의 발전은 인간과 사회 사이의 소통을 발전시키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며 "기술의 세상에 몰입된 사람들이 상호 이해의 측면에서 50년 전보다 소통을 더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수많은 말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쏟아지고 있지만 상대방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은 오히려 사회, 문화, 계층, 인종 간의 오해와 불신, 증오를 양산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발전은 말과 소통에 있어서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한 대학생이 대자보에 쓴 '안녕들 하십니까'에 온 사회가 나서서 응답하는 현상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소통에 목말라했음을 보여준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이 평범한 인사말에 사람들은 자신이 품고 있던 고민과 생각, 희망사항을 잇달아 털어놓고, 안녕하지 못한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준 것처럼 말의 힘은 크고 강하다. 대자보를 붙인 주현우 씨는 "이제 우리는 말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말의 해, 우리들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고민해 본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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