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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속세'로 소란한 조계사의 살풍경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6초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조계사밖에 없었다. 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종교계가 중재에 나서 달라."


수배 중인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25일 오후 6시30분 취재진 앞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다른 지도부 3명과 함께 조계사로 들어 온 박 부위원장의 기자회견은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삼엄한 긴장감이 사찰을 휘감았다.

조계사 경내에서는 여전히 목탁과 불공을 드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지만 박 부위원장이 나타나자 이 곳은 순식간에 사찰에서 우리 사회의 그 어느 곳보다 격렬한 파열음을 내는 곳이 돼버린 듯했다. 간간이 이어지던 신도들의 발길도 어느덧 뜸해졌다.


조계사 앞 마당은 취재진들이 눌러대는 셔터 소리, 자판 소리와 함께 철도노조 지지자들이 보내는 환호와 박수로 가득 메워졌다. 지지자들은 "힘내세요" "철도민영화 반대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박 부위원장을 맞았다. 박 부위원장은 이에 응답하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철도노조 측은 경찰이 지켜보는 것을 의식한 듯 "현재 상황상 기자회견을 오래 가질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회견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극락전 안으로 다시 사라졌다.


수갑을 소지한 사복경찰이 경내에 들어왔다 철도노조원들에게 발각되면서 바깥으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면서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도 조계사의 긴장감은 줄지 않았다.


종교시설인 점을 감안해 강제진입은 없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양측의 날 선 신경전은 민주노총에 대한 강제진입이 펼쳐졌던 지난 22일보다 오히려 더욱 고조된 분위기였다.


경찰 300여명은 조계사 바깥 쪽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공간인 종교시설 안에서 벌어진 소리없는 전쟁이었다.


성탄절을 만끽하는 분위기가 가득한 종로 거리를 몇 발짝 뒤로한 채 팽팽한 긴장감을 내뿜은 25일 밤의 조계사.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 '속세'의 문제로 소란해진 사찰 안에서의 풍경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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