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선물·옵션 동시만기일이었던 전날 외국인투자자들이 코스피 시장에서 69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올 들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규모 순매도다. 지수에 미치는 외국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연말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날 외국인의 순매도는 만기요인보다는 외부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 현·선물 대규모 매도세가 나타났고, 이로 인해 시장의 하락이 나타난 흐름이다. 실제로 전날 외국인의 순매도물량 가운데 5000억원 이상이 비차익거래를 통해 쏟아졌다.
13일 시장 전문가들은 전날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는 국내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어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 전까지는 외국인의 움직임이 수급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전일 외국인 매도세 확대의 가장 큰 이유는 연준 자산매입 규모 축소(QE Tapering) 우려다. 지난 상반기에 외국인투자자들이 일간 5000억원 이상 순매도한 경우(5월말~6월말에 집중)만 되짚어 봐도 유사성이 발견된다. 당시 주요 이슈로는 '5월22일 버냉키 연준 의장의 연내 자산매입 규모 축소 발언' 및 '6월18~19일 FOMC·미국 실업률 전망 하향과 5월말 통화정책 기조 지속'이 있다. 이후 양적완화 축소 논쟁은 7월초 버냉키 의장이 '미국 경기 회복을 전제로 한 자산매입 변경'의사를 확인하면서 진정됐다. 국내증시 외국인 매매 변곡점도 이 시기와 맞물렸다.
가깝게는 10월말 FOMC 이후 외국인투자자들의 순매수 탄력 둔화를 주목할 수 있다. 종전보다 연준의 경기 판단이 강화되면서 12월 양적완화 축소 시행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번주 미국 의회가 큰 틀에서 내년 예산안 합의를 이룬 점도, 정책 변경에 앞서 연준의 부담을 낮추는 효과로 해석되고 있다.
FOMC까지 4거래일을 남겨둔 시점인 만큼, 결과를 확인하고 대응하려는 심리 자체를 무시하면 안된다. 외국인 매매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가 하반기 강세장을 전망한 기본적인 축은 '글로벌 유동성 공급 지속'과 'G3 경기 모멘텀 합류'다. 이중 달러화 유동성 공급의 속도 조절 여부가 지금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단기적인 모멘텀 둔화 국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기다. 아울러 양적완화 축소 논쟁이 국내증시 외국인 매수세를 위축시켰던 5~6월과 11월 초 사례를 떠올릴 때, 수급 구도에서도 매수 주체 공백 우려가 생겼다. 위축된 투자 심리를 감안한다면 작은 뉴스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지수 변동성이 커질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불확실성의 총량을 생각한다면 12월 FOMC 이후 감소가 예상된다. 아직까지 양적완화 축소 실시 여부나 규모에 대한 추측만이 무성할 뿐이고, 시장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한 연준의 추가 정책 대응 가능성도 열려 있다. 따라서 시장 대응에 있어서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설령 모멘텀이나 수급 구도에서 추세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FOMC 결과 확인이 선결 사항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병현 동양증권 애널리스트= 12월들어 ISM 제조업 지수, 고용지표 등 미국 주요 경제 지표들의 빠른 개선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경기 서프라이즈 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했다. 미국의 경기 모멘텀 확보는 펀더멘털 회복과 관련된 가장 긍정적인 소재이지만, 12월 FOMC를 앞두고 있는 시기적인 특성상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12월 FOMC 이후 양적완화 축소에 관련된 불확실성이 경감된다면, 양호한 펀더멘털이 부각되는 국면이 도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중국도 최근 지표들이 예상치보다 양호한 결과들을 발표 하면서 서프라이즈 지수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양호한 경제 지표에 연준 주요 인사들의 발언이 더해지면서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고조된 모습이다. 양적완화 축소시점과 관련된 설문 결과를 보더라도 12월 내지는 1월 중 양적완화 축소 결정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60% 수준이다. FOMC 이전까지 리스크 지표의 향방이 증시 방향성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테이퍼링 우려가 더욱 깊어졌음에도 이번주 매크로 리스크 인덱스(MRI)가 지난 주 고점(0.38)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는 점과 미 국채 금리나 달러 가치의 변화 폭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미치는 부담의 강도는 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11월 중 순유입으로 전환되었던 국내 주식형 펀드 자금에서 재차 유출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 잔액은 이달 6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한편 신흥국 펀드 자금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주 중 국내 증시 외국인 역시 매도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미루어 외국인들의 본격적인 '셀 코리아(Sell Korea)'에 대한 우려로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라는 악재는 빨리하면 할수록 시장에 긍정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연준의 속내가 보유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양적완화 축소라는 중립구간을 이용하면서 최대한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자산매각과 자금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시장이 불안해하는 양적완화 축소 이슈는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노출된 재료가 되면서 악재로서의 가치가 줄어들 것이다. 금융시장에도 불확실성 제거 및 미국 경기 회복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재료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발 양적완화 축소는 가급적 빨리 시행하는 것이 좋다. 이슈가 나오기 이전인 올해 1∼5월까지 외국인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총 37억6000만달러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5월 이후 동남아 외국인 매수는 급격히 위축됐으며, 상대적으로 안전지역으로 분류된 한국·대만시장에서 226억달러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반면 연내 양적완화 축소의 시행 가능성이 낮아지기 시작한 11월 들어 한국·대만에 대한 외국인 매수가 주춤한 모습이다. 따라서 현재는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외국인 매수 위축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년 1·4분기를 전후로 보완책과 더불어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될 경우, 한국 입장에서 불안요소 제거 및 외국인 매수 전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적어도 중립 또는 긍정적 재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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