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구미 시작으로 전국 6개 지역 정부부처 합동 '화학재난 방재센터' 출범 예정...기대와 우려 교차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 지난 5월2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발생한 삼브롬화붕소 가스 누출 사고에 출동한 방재 당국의 인력은 무려 166명이었다. 지난해부터 잇따라 발생한 공단 불산 가스 누출 사고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혼쭐 난 방재 당국들은 벌집을 쑤신 양 호들갑을 떨었다. 공무원들은 물론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22화학대대 병력 15명까지 현장에 파견돼 제독 작업을 진행했다.
#2. 경북 구미의 한 화학물질 취급 업체 사장 A씨는 연 10여차례에 걸친 정부 관련 당국들의 안전 점검 때문에 제대로 사업을 못할 지경이다. 소방서, 고용부, 환경부, 지자체, 가스안전공사, 산업단지관리공단 등에서 수시로 안전 점검을 나오는 바람에 관련 서류 준비하는 일만해도 엄청나다. 또 막상 사고가 난다고 하더라도 기댈 언덕이 없다. 각 기관별로 해당하는 업무가 다르고 총괄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와 관련해 우리나라 정부가 얼마나 허술하게 대응해왔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정작 필요할 때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반면, 안 그래도 될 곳에 과다하게 힘을 쓰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기업체들의 경영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로 각종 규제와 안전 점검이 있었지만 실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9월 구미 불산 누출 사고가 이같은 무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환경부 소유의 특수화학분석차량이 인천에서 구미로 출동하는데 만 하루가 걸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이 늦어졌다. 이로 인해 구미시가 피해 지역 주민들을 일찍 귀가시키는 바람에 3000여명의 주민들이 호흡곤란ㆍ피부발진 등 2차 피해에 시달렸다. 경제적 피해만 554억에 달하는 초대형 사고였다.
이에 교훈을 얻은 정부가 최근 전국 6개 지역 별로 화학물질 방재를 담당하는 부처ㆍ기관들이 한데 모아 일하는 '합동 방재 센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5일 개소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한 구미 화학재난 합동방재센터를 시작으로 내년 1월까지 시흥, 서산, 익산, 여수, 울산 등에 각각 광역 단위 화학물질 방재 작업을 총괄하는 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화학물질 방재센터는?
이날 구미를 시작으로 문을 여는 화학재난 합동방재센터는 소방서, 환경부,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가스안전공사, 산업단지공단 등 6개 기관에서 파견된 40여명의 인력이 근무하게 된다. 자리를 잡은 공단을 중심으로 광역 시ㆍ도를 관할하면서 화학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지도ㆍ점검, 안전교육, 사고시 대응 등을 전담한다. 그동안은 안전 지도ㆍ점검ㆍ교육을 각 기관마다 실시하고 사고시 대응도 제각각이었지만, 앞으로는 합동방재센터에 참가한 각 기관들의 협의 하에 일관화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입장에선 연 10여차례에 걸쳐 각 기관별로 진행되는 안전 지도ㆍ점검ㆍ교육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사고시 대응도 제각각으로 이뤄지던 것이 합동방재센터의 주관으로 신속ㆍ효율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부처별로 분산ㆍ관리하던 재난대응 시스템과 장비 등이 통합ㆍ연개돼 사고 원인 규명 및 신속한 출동, 전문적인 방재 작업 실시, 피해범위 예측 과학화, 주민피해 최소화의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실제 5일 열린 구미 합동방재센터 개소식에서는 화학사고 대응 합동 시범 훈련이 실시됐는데, 사고 현장 및 피해자 발생 정보가 주민ㆍ병원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국민들이 사고 정보를 빠르게 파악해 대피할 수 있었고, 피해자들에 대한 응급 처치도 정확ㆍ신속성을 기할 수 있었다. 또 각 기관별로 운영하던 화학재난 대응정보시스템(CARIS)을 연계함에 따라 화학사업장의 취급 물질 정보와 실시간 기상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됨에 따라 유출된 화학 물질의 확산 속도ㆍ범위 등을 과학적으로 예측해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의미와 특징
이 센터는 정부 수립 최초로 특정 업무 수행을 위해 각 부처가 인력ㆍ장비ㆍ예산을 각자 부담하면서 만들어 낸 협업조직이다. 정부는 이 센터의 원활한 독자 업무 수행을 위해 단독 전산 코드명을 부여했고, 내부적 업무 처리 효율화ㆍ책임 부여 등을 위해 사상 최초로 6개 부처 장관 공동 명의의 훈령까지 만들었다. 정부 각 부처들은 독자적으로 각자의 법령에 근거해 일을 하는 만큼 같은 빌딩에 입주해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더라도 각자의 업무는 독립적으로 처리해왔는데, 이처럼 공동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처를 초월해 기관(방재센터)를 만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합동방재센터는 별도의 예산, 조직, 지휘체계가 없는 3무형 기관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합동방재센터는 기존의 각 기관들이 화학물질 방재를 위해 사용하던 인력ㆍ예산ㆍ장비 등을 합쳐 사용할 뿐 별도의 예산을 배정받지 않았다. 간사 격인 환경부가 6개 센터 사무실 임대ㆍ운영을 위해 16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게 전부다. 이로 인해 정부는 막대한 예산ㆍ인력을 절약할 수 있었다. 지난해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이후 각 부처별로 방재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자 총 860여명의 인력 충원ㆍ수천억대의 장비 추가 구입 등의 요구가 봇물터지듯 나왔던 것을 '기존 인력ㆍ장비를 활용한 합동방재센터 설치'로 갈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향후 과제는?
합동방재센터가 출범하긴 했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화학재난 방제가 신속ㆍ효율적으로 잘 진행될 지, 안전 점검ㆍ지도ㆍ교육은 허술하지 않게 진행될 지 등은 아직까지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형 조직'은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아직 제대로 작동될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고 발생시 지휘 체계 및 책임 소재가 불명확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운영 과정에서 각 기관간 갈등ㆍ불협화음이 발생할 경우 대책이 없다. '사무실만' 같이 쓰는 조직이 정부의 의도대로 과연 부처간 칸막이를 허물고 기관간 소통 협력을 통해 맞춤형 국민안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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