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세계지리 8번 문항 출제오류를 놓고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당국을 상대로 한 수험생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 데다 여당에서도 출제오류의 책임론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능을 치른 수험생 21명이 평가원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결정하고 수능 등급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29일에 같은 이유로 소송을 낸 수험생 38명을 포함하면 소송참여자가 59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수험생들은 "등급 결정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집행정지 신청도 냈다. 따라서 앞선 사건을 맡은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로 재배당되거나 병합될 수도 있다.
국회 교문위 소속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의 심사과정에서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박 의원이 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수능 이의신청 및 심사집행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지리와 한국지리 문항과 관련해 이의가 제기된 14건을 심사위원 15명이 2시간 동안 심사했다. 박 의원은 "이를 문항당 평균 심사시간으로 환산하면 8분30초에 불과하다"며 "날림심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일 월례회의에서 "수능의 세계지리 출제 오류는 국가 주관 시험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며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야당에 비해 말을 아껴온 새누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수능혼란, 교육당국에서 책임지는 사람 한 사람도 없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 "이번 사안이 사법부의 판단에만 맡겨질 경우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관련 학생들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서 "국가고시의 경우 행정소송의 결과에 따라 추가 합격자를 선발하면 국가가 충분히 피해를 배상할 수 있을 것이나 이번 수능 오류 논란에서의 피해 학생들은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대입전형의 특성상 고작 금전적인 배상 이외에 실질적인 피해 배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은 사법부의 판단에만 의존해 이를 따르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아무런 사과도 책임자의 문책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심지어 우수한 다수의 학생들이 이 문항을 맞추었기 때문에 오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비교육적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 학생들이 소송에서 승소하고도 실질적인 피해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비극이 벌어지기 이전에, 교육 당국은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관련자 문책을 비롯해 피해 학생들의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심재철 최고위원은 지난달 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평가원이 정답은 하나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수능성적을 발표했는데 이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책임회피"라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교육부는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면 평가원장은 물론 출제·검토 관련 공무원의 책임 문제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면서 "성적발표가 급하다는 핑계로 출제오류를 어물쩍 덮으려고 하는데 수험생의 거센 반발뿐 아니라 비교육적 처사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지리 8번 문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만을 '보기'에서 고르는 문제로, 평가원은 'A(유럽연합)는 B(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인 'ㄷ'항을 맞는 설명으로 제시했으나 일부 수험생들은 인터넷 기사 등을 근거로 NAFTA(18조달러)가 EU(17조5000억달러)보다 더 크다며 오류를 지적했다.
평가원은 수능 시행일인 지난달 7일부터 11일까지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은 뒤 이의심사실무위원회와 이의심사위원회를 열어 접수된 이의사항을 심사, 그달 18일 모두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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