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지목했다. 의료시스템과 의료기기ㆍ의약품 등 의료제품을 패키지화해 신흥국 진출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특히 의료기기 산업은 아베노믹스의 핵심동력으로 과거 자국시장 중심의 육성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의료기기, 신약 등 바이오메디컬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다. 향후 10년간 새로 창출될 부가가치의 40%(4조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2012년 약 3000억달러 규모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웃도는 규모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과거 5년(2007~2012년) 평균 성장률이 22%로 이후 5년간 연평균 16%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의료기기 산업은 높은 기술력으로 세계 2위 규모다. 한국은 세계 13위 수준으로 규모 면에서도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지속적인 무역적자와 저조한 해외시장 진출 등 국제경쟁력도 낮다. 일본은 아시아 신흥국 중심으로 2020년까지 10곳의 지점을 개설하고, 2030년에는 5억엔 시장을 차지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로 신흥국 병원 건설을 지원하고, 현지 의료인에게 일본 의료시스템과 장비를 경험할 연수 기회를 제공해서 향후 수출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의료 시스템 개혁이 진행 중인 신흥국을 방문해 일본 의료시스템의 강점과 협력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는 등 세일즈 외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정부 차원의 생태계 조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아직까지 국내 의료기기 산업 연구개발 및 진흥정책은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연구개발(R&D) 투자도 부처 간의 역할과 투자 효율화 조정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가 기업처럼 움직이는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적합한 범부처 전략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는 생명복지전문위원회 산하에 의료기기 소위원회가 구성돼 활동 중이며, 미래부의 미래기술전략로드맵 추진단 등 여러 정부부처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일본 관서 지역의 바이오메디컬 특구와 오사카 의료기기 클러스터에 맞상대할 수 있는 융복합 집적단지를 통해 핵심주체 간의 참여와 협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대규모로 투자된 집적단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은 의료기기를 포함한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가치사슬 측면에서 연속성의 단절 현상이 우려된다. 대표적인 것이 집적단지 내에 임상시험센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오사카 의료기기 클러스터 중심에 오사카 국립순환기병센터가 위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연구소와 병원이 융합되어 있는 이 센터에서는 임상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 수요가 연구개발에 반영되고 또한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전임상과 임상시험을 통해 실용화 및 제품화로 가속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오메디컬 연구개발이 다른 분야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은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제품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체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중개연구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병원과 임상의사의 역할이 있다. 또한 병원은 현장의 미충족 의료수요(medical unmet needs)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의 아이디어가 발생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개발물의 최종 소비처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규모 바이오메디컬 집적단지의 성공전략에는 반드시 임상시험센터의 존재와 함께 산ㆍ학ㆍ연ㆍ병 연계 생태계 확보가 필수적이다. 일본의 NCVC는 바로 그러한 생태계의 코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선순환 생태계 구축은 반드시 대규모 하드웨어 인프라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 필요한 기술 발굴과 아이디어 공유, 중개임상연구를 통한 제품화, 최종 소비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는 기능적인 클러스터 구축으로도 가능하다. 즉, 산ㆍ학ㆍ연ㆍ병 자원과 지식 인프라가 이미 밀집되어 있는 지역을 선정하여 각 요소를 기능적으로 묶어줌으로써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의 오사카 의료기기 클러스터 전략도 유사한 패러다임이라고 믿는다.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격돌이 예상된다. 철저히 대비하자.
선경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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