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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14-①"갈 때 가더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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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⑭낙원동 '가위손' 이발소 14곳 단골손님들 이야기


이발에 3500원, 염색에 5000원
싹둑싹둑 가위소리에
검은머리 청춘이 거울 앞에 앉아있다

[그 섬, 파고다]14-①"갈 때 가더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려고" 15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공원 동문 근처 한 이발소에서 한 어르신이 이발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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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부장,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1시. 파고다공원 뒤편에 있는 이발소 장수이용원에 들어서자 '윙~ 윙~' 바리캉 소리와 '싹둑싹둑' 가위질 소리가 요란합니다. 네 개의 이발 의자엔 이미 할아버지 손님들이 첫날밤 새색시처럼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할아버지, 털어드릴까요? 감겨드릴까요?" "…" 말이 없습니다. 귀가 어두우신 거네요. 이발사가 좀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묻자 김 할아버지(95)가 그제야 "안 감아"라고 힘없이 대답하십니다. 이발사가 가운을 걷어내자 김 할아버지는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이발소를 나서는 김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아흔이 넘으셨는데 여기까지 이발하러 나오기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응? 응? 뭐라고? 안 들려"라고 되물으십니다. "할.아.버.지. 이.발. 왜. 하.시.냐.고.요?" 한 글자 한 글자 끊어 묻자 할아버지가 한마디 툭 던지시네요. "응…. 갈 때 가더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려고."


파고다공원 주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발소 이야기입니다. 공원을 중심으로 이발소들이 다닥다닥 몰려 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청 보건위생과에 따르면 낙원동 일대 이발소는 14개에 달합니다. 시중에선 찾기 힘든, 그래서 보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발 가격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이발소 특유의 사인볼이 빙빙 돌아가는 가게 앞에는 하나같이 '이발 3500원, 염색 5000원'이라고 쓴 가격표가 나붙어 있습니다.

이 '착한 가격'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낙원동 일대 이발소를 찾는 것이죠. 어지간한 동네에선 배춧잎 한 장(1만원)은 너끈히 지불해야 하니 그에 비하면 이곳 이발소들의 가격은 가히 파격적입니다. 좁은 동네에 이발소가 이렇게 넘치는데 장사가 될까요. 그래도 아직까진 가게마다 손님이 있는 편이랍니다. 이 일대 이발소 식구들에 따르면 이발소마다 하루 평균 60~70명이 이발을 하고 염색을 하는 손님도 50~60명이라니 '박리다매'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입니다.


[그 섬, 파고다]14-①"갈 때 가더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려고" 15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공원 북문 근처에서 한 어르신이 낙원이발관에 손님이 많은지 확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이 일대를 '탐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이마에는 비눗물을 두른 할아버지들이 이발소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죠. "내일 아파트 경비 면접 보러 오라고 해서 염색했어. 좀 젊어 보이나 몰라." 노태홍 할아버지(73ㆍ서울 금호동)는 물기를 머금은 앞머리를 툭툭 털었습니다. 노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염색을 한다네요. 아내가 흰머리를 두고서 잔소리를 퍼붓기도 하지만 깔끔하게 안 하고 다니면 바깥에서 무시당하기 십상이라는 생각에서죠. 할아버지는 파크이용원 단골입니다. "우리같이 돈도 팍팍 못 쓰고 돈도 잘 못 버는 사람들이 자주 오지. 여긴 이발비가 싸니깐. 나이 잡순 분들이 많이 와." 노 할아버지가 염색을 하기 시작한 건 마흔세 살 때부터랍니다. 젊은 시절 르네상스호텔 나이트클럽에서 12년을 근무했다는데 노 할아버지의 염색 '입문' 계기가 이채롭습니다. "나이트클럽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잖아. 머리 희끗희끗하면 보기 싫을까봐. 그래서 염색하기 시작했어."


이 일대 이발소에선 단골이 많다 보니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 어르신 요새 통 안 보이시네. 안창호 선생 비서실장이셨다는 그분 말이여." 장수이용원에 있던 한 손님의 말에 한창 가위질에 몰두해 있던 이발사가 화답합니다. "그르게. 그분 봄까지 오시고 안 보여. 돌아가셨나봐…."


확인해보니 향년 105세를 일기로 지난 4월 타계한 최고령 독립운동가이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이었던 고(故) 구익균 옹도 이곳의 단골이었군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간병인까지 대동해야 했지만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곳에서 이발을 했다고 합니다. "청춘의 넋은 어디 가고 흰머리만 남았구나." 청년의 기백은 어디 가고 백발 서린 노인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한탄이었을까요. 고인은 이발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서울 상암동에 사는 윤영식 할아버지(71ㆍ가명)도 3년 전부터 장수이용원을 단골로 드나들고 있습니다. "공덕에서 5호선 타고 와. 여기서 이발하고 조기(저기) 다문화거리에 있는 한국기원에 가서 바둑도 두고 여기 오면 안 심심해서 좋지 뭐." 윤 할아버지는 건국대 64학번이랍니다. 태생적으로 머리색이 붉은 편이라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개성시대이니 일부러 빨간색, 갈색 등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지만 1960년대만 해도 튀는 머리색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였겠죠. "젊었을 땐 남들 보기 싫을까봐 염색했는데 이젠 내가 보기 싫어 꼬박꼬박 염색하는 거지 뭐."


장수이용원과 불과 열 걸음 떨어져 있는 파크이용원. 이발소 유리벽에는 모 방송국에서 촬영한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훈장처럼 붙어 있습니다. 안을 둘러보니 붓글씨로 '孝(효)'라고 쓴 액자 아래 염색약을 잔뜩 바르고 눈썹까지 염색약을 칠한 할아버지가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머리를 맡긴 이도 가위를 하는 사람도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나이가 지긋해 보입니다. 이곳에서 막 이발을 마치고 나온 박윤서 할아버지(68ㆍ서울 신설동)는 "여기서 머리 깎아주는 사람들 다 경력 20년은 족히 넘은 베테랑이야. 싸지, 머리 잘 깎지 그러니깐 나도 2년째 이 집만 와"라는군요. 박 할아버지는 염색도 꼭 이곳에서만 한답니다. "동네 미용실서 염색하고 머리를 감겨줬는데 염색물이 잘 안 빠졌드라고. 여기는 머리도 시원하게 잘 감겨줘."


[그 섬, 파고다]14-①"갈 때 가더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려고" 15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공원 동문 근처 한 이발소에서 한 어르신이 이발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그렇다고 이발소에 머리 희끗한 '노인' 손님만 오는 건 아닙니다. 부천에 사는 한 20대 청년은 10분당 1000원 하는 주차비를 내고서라도 자가용을 몰고 장수이용원에서 머리를 자른답니다. 이발을 마치고 나온 한 손님은 "저기 안경 쓰고 조끼 입은 양반 있잖아. 그이가 미국 뉴욕서 오래 활동한 양반이야. 저 양반한테 머리하려고 부천서 일부러 자가용 끌고 오는 20대 청년도 있어"라고 귀띔합니다. 또 다른 이발소인 뉴탑골이용원에서 근무하는 한 아줌마는 "지나가다가 가격표 보고 놀라면서 '이런 데도 있네'하고 호기심에 머리 깎고 가는 젊은이도 있어. 그러다가 단골된 사람도 여럿이야"라고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낙원동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3~4년 후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지다 보니 단골손님이 줄고 있어서입니다. 이 때문에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요즘엔 예전 같지 않아. 여기 오는 노인들처럼 우리(이발소들)도 쇠락해 가는 거지 뭘…."


◆"찍기는 찍어야 하는데…." 풀기 힘든 숙제 '영정사진'
단정히 머리를 깎고 검은 머리로 물을 들여 10년은 젊어진 것 같은 어르신들은 어디에라도 가시려는 걸까요? 이발 가격이 싸다는 이유 말고 다른 건 없을지 '돌직구'를 날려 봅니다. "영정사진은 안 찍으세요?" 얘기를 꺼내자 어깨에 하얀색 천을 두르고 이발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도, 검은색 염색약을 바르고 앉아 계신 할아버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네요. "그런 걸 벌써부터 찍어서 뭐해", "나 아직 여든도 안 됐어" 등의 호통이 돌아옵니다. 두 할아버지 모두 2~3년 후면 여든인데도 아직 영정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40년 경력의 이발소 주인이 할아버지들의 말을 거듭니다. 파고다공원 후문 쪽에서 5년이나 이발소를 운영했지만 단 한 번도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는군요. 이유가 궁금한 찰나, 이발소 주인인 김 할아버지(68ㆍ서울 방학동)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뭐가 자랑이라고 영정사진 찍는다고 하겠어. 먼저 말 안 하는데 뭐 좋은 일이라고 '영정사진 찍나 봐요?' 이렇게 물을 수 있나. 맘속으론 그럴 작정으로 머리 깎으러 왔어도 영정사진 찍으러 간다고 말 안하지."


실제로 파고다공원과 종묘공원 인근에 위치한 사진관에는 할아버지 손님이 뜸하답니다. 현재 이 일대에 남아 있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옛 피카디리극장) 인근에 위치한 W사진관도, 종로3가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S사진관도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는 어르신들이 1년에 3명이 될까 말까 한답니다. 사진을 찍으러 와도 '영정사진'이라는 말 자체를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는군요.


"(영정사진) 찍으러 왔다는 소리는 안 하고 '나중에 하나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사진 하나 찍어주소'라고 해. 영정사진이라는 얘기를 하기 싫어하는 거지." S사진관을 운영하는 문재철 할아버지(72ㆍ경기도 김포)가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신 어르신들의 마음을 대신 헤아려봅니다.


겉으론 짐짓 관심 없는 척하지만 영정사진은 할아버지들에게 풀기 싫은 숙제인 듯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기자가 영정사진에 대해 묻자 대뜸 "나 찍어줄라고?"라고 반문합니다. 아니라고 하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찍기는 해야지. 언제 찍어도 찍어야 하니까. 그나마 볼때기가 탱탱할 때 찍어야지. 나이 들어 도깨비처럼 나오면 쓰나. 근데 일부로 찾아가서 찍긴 싫어. 누가 찍어주면 좋고."


날이 풀리는 매년 3월쯤 종묘공원 관리사무소 옆에선 할아버지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행사가 열린답니다. 이때를 기다려 많은 할아버지들이 영정사진을 찍는다는군요. "난 진작 다 해놨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시는 정화진 할아버지(83ㆍ서울 사당동)도 7년 전 이곳에서 영정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대포 한잔하고 종묘공원 갔는데 사진 찍어 준다기에 찍었지. 기분? 기분이야 뭐 갈 때 되면 가는 건데 뭔 특별한 것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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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김동선 부장 matthew@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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