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노림수는 시장 개척 후 해외시장 선점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1. 조지 E. 파타키 전 뉴욕주지사, 톰 대슐 전 상원의원, 에드워드 G. 렌델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메리 피터스 전 미국 교통부장관 등이 11월16일 일본 도쿄 인근 야마나시 시험철도에서 자기부상열차 '리니어 신칸센'에 탑승했다. 파타키 전 지사는 "뉴욕 지하철에서도 적어도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데"라며 미끄러지는 듯한 승차감에 감탄했다. 리니어 신칸센은 이날 미국에서 온 전직 정관계 인사들에게 시속 502㎞의 속도를 자랑했다.
#2.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본의 자기부상열차를 "꿈의 기술"이라며 자찬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초고속열차를 도입하면 뉴욕과 워싱턴을 1시간 이내로 묶을 수 있다"며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현재 시험 주행 중인 일본의 리니어 신칸센은 최고 속도가 시속 500㎞를 넘어 한국 고속철 KTX의 300㎞에 비해 70%가까이 더 빠르다. 미국에서 가장 빠른 기차인 암트랙의 아셀라가 최고 시속 240㎞를 내는 데 비하면 2배 이상 빠르다. 현재 아셀라는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368㎞를 2시간45분에 달리는 반면 리니어 신칸센은 1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다.
일본이 미국에 자기부상열차 시스템을 자랑하는 것은 총알 열차를 '비싸게' 팔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은 미국에 뉴욕~워싱턴 간 자기부상철도 건설 비용의 상당 부분을 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수지타산을 맞추지 않고 팔고 보겠다는 얘기다.
리니어 신칸센을 개발한 철도회사 JR도카이(JR東海)의 가사이 요시유키(葛西敬之) 회장은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에 "우리는 이 기술을 미국과 나누고자 한다"며 "미국이 불가결한 우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INYT는 전직 미국 정관계 인사의 리니어 신칸센 탑승 행사를 전하며 초고속 열차 시스템을 미국에 도입하기 위한 일본의 마케팅과 미국 내 움직임을 보도했다.
일본은 금액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뉴욕~워싱턴 사이 자기부상열차 시스템의 절반 정도 구간을 무상으로 건설해줄 것을 고려한다고 알려졌다. INYT는 JR도카이가 도쿄~오사카 구간에 건설할 계획인 자기부상열차 시스템을 바탕으로 추산할 때 일본 정부가 마일(1.6㎞)당 3억달러꼴로 모두 50억달러의 공사비를 부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 자금을 일본 기업의 개발도상국 수출을 지원하는 일본국제협력은행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소재 노스이스트 마그레브라는 민간회사가 뉴욕~워싱턴 자기부상철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2010년 설립됐고 신재생에너지 등 사업을 벌이는 웨인 L. 로저스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노스이스트 마그레브는 최근 미국 정부에 자기부상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로비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리니어 신칸센을 체험한 대슐 전 의원 등은 바로 이 회사의 자문위원들이다.
아베 정부가 미국에 마그레브를 반값에까지 제공하겠다며 선심을 쓰는 것은 해외시장을 뚫어놓는 게 우선이라는 전략에 따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일본 외에는 자기부상열차 시스템 상업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독일은 트랜스래피드라는 이름으로 마그레브를 추진하다 2006년 충돌사고 이후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上海)에서 독일이 건설한 짧은 구간만 운영 중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마그레브를 추진할 경우 다른 나라도 이를 따르고, 그 단계에서 일본은 해외시장을 제 값을 받고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JR도카이는 내년에 착공해 도쿄(東京)와 나고야(名古屋), 오사카(大板)를 잇는 자기부상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도쿄~나고야 구간은 2027년에 개통하고 오사카까지는 2045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비용은 모두 1000억달러로 잡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 사이를 리니어 신칸센이 쏜살처럼 오갈 가능성은 아직은 크지 않다. 노스이스트 마그레브는 붐비는 이 구간의 항공과 고속도로 교통을 분산하고,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줄여 업무 효율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INYT는 미국 동북부 교통을 개선하는 제안은 많았지만 실행에 옮겨진 방안은 없다며 이 구상이 힘을 받을지 의문을 표시했다.
더구나 미국 연방정부 부채 감축이 지상과제인 여건에서 값비싼 철도 사업은 채택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사이 JR도카이 회장은 INYT에 "과거엔 미국이 교통 기술을 선도했지만 이젠 사정이 좋지 않다"며 "이번엔 미국과 일본이 함께 세계를 선도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자기부상열차. 열차에 장착된 초전도체 자석과 궤도 내 전자석의 반발력을 이용해 약 10cm 떠서 주행한다. 처음부터 떠서 달리는 건 아니다. 리니어 신칸센은 시속 144km를 넘으면서 뜬다. 자기부상(magnetic levitation)열차를 줄여서 마그레브라고도 부른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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