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데려다주기·대소변 치우기는 예사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파고다 파수꾼'을 자처하는 서울 종로2가 파출소. 이곳은 시내 어느 파출소보다 112 신고 건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든다. 파고다공원에 인접해 있는 이 파출소의 경찰들은 도심 한복판의 취객까지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낸다.
종로2가 파출소에 따르면 관할지역인 낙원동 일대에서 음주 시비, 행패, 소란 등과 관련한 민원이 7월 490건, 8월 377건, 9월 386건 등으로 올 하반기에 한 달 평균 417건이 발생했다. 주취자 등 보호조치를 행한 횟수도 7월 351건, 8월 373건, 9월 276건 등 한 달에 333건에 달했다. 하루에 적어도 25건의 '일처리'를 한 셈이다. 이 외에도 돈의동 쪽방촌의 음주소란ㆍ난동행위를 제압하고 '박카스 아줌마'의 성매매 호객행위를 단속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어르신들의 아지트인 파고다공원을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과 관련된 민원이 유난히 많이 들어오는 것도 이 파출소의 특징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을 집에 데려다주거나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국립의료원으로 후송하는 일 등이 이들의 주된 업무다. 이렇다 보니 손에 대소변을 묻히는 일도 흔하다고. 지난 7월 70대 할아버지가 파고다공원 동문에서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부인과 사별한 후 홀로 인근 재동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머리부터 쓰러진 탓에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윤종배 경위(42)는 대소변으로 범벅이 된 할아버지를 맨손으로 수습해 중구 백병원으로 옮겼다.
노인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선의'를 베풀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윤 경위는 지난 9월 강원도 춘천에서 홀로 파고다공원을 찾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진 한 할아버지를 인근 여관에 모셔다 드렸다. 할아버지는 '서울서 인생을 마무리하러 왔다'고 되뇌였다고. 이 모습이 안쓰러웠던 윤 경위는 할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돈을 빌려줬는데 이 할아버지는 여관서 열흘가량을 머문 뒤 여관비도 치르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많이 상대하는 곳이어서 파출소 근무자들도 다른 곳보다 연령대가 높을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정반대다. 이곳 근무자의 평균 연령은 45세로 다른 파출소보다 낮다. 하루 평균 40여건의 신고가 들어오고 주취자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 '젊은' 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종로2가 파출소에는 총 9명의 경찰관이 불철주야 근무를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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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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