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삼성의 천적다웠다. 두산의 손시헌이다. 포스트시즌 첫 선발 출장에서 눈부신 맹타로 팀의 7대 2 승리를 견인했다.
24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9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장, 4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으로 폭발했다. 안타 가운데 하나는 홈런이었다. 6대 1로 앞선 6회 선두로 나서 바뀐 투수 신용운으로부터 비거리 100m의 대형아치를 빼앗았다. 초구를 잡아당겨 가볍게 왼 담장을 넘겼다.
가을야구에서 처음 맛본 홈런이었다. 생애 네 번째 포스트시즌을 맞은 손시헌은 이날 경기 전까지 총 111타석에서 대형아치를 때리지 못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기도 했다. 2005년 삼성과의 맞대결이다. 4경기에 나섰으나 15타석에서 안타 1개를 뽑는데 머물렀다. 삼진으로만 네 차례 물러났다.
악몽은 올해도 이어지는 듯했다. 허리 통증 탓에 정규시즌 93경기에서 타율 0.252 1홈런 26타점으로 부진했다. 결국 가을야구에서 후배 김재호에게 자리를 내줬고, 넥센과의 준 플레이오프에서 4타석을 밟는데 그쳤다.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선 아예 벤치를 지켰다.
중용되지 않는 처지에도 손시헌은 실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며 김진욱 감독의 부름을 기다렸다. 몇몇 취재진의 걱정 섞인 물음에 그는 “언젠가는 경기에 나가지 않겠느냐.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베테랑다운 여유로운 준비는 곧 기회로 이어졌다. 이날 9번 타순에 선발로 배치됐다. 사실 중용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삼성전에서 보여준 ‘킬러 본능’이다. 정규시즌 12차례 맞대결에서 타율 0.316(38타수 12안타) 1홈런 2타점을 남겼다. 황병일 수석코치는 “삼성에 유독 강했다. 대구에서의 성적(타율 0.300)도 좋았고. 그 강세를 믿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손시헌은 믿음에 맹타로 화답했다. 첫 타석부터 적시타를 터뜨렸다. 1대 1로 맞선 2회 2사 1, 2루에서 상대 선발투수 윤성환의 시속 131km 슬라이더를 공략, 중전안타로 연결했다. 그 사이 3루 오재원이 여유롭게 홈을 통과, 두산은 역전을 이뤘다. 그 뒤에도 안타 행진을 계속됐다. 4회 좌전안타로 일찌감치 멀티히트를 선보였고, 6회 솔로포로 삼성의 추격 의지를 꺾어놓았다. 결승타에 쐐기홈런까지. 두산 승리의 일등공신은 단연 손시헌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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