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중국 최고 부자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大連萬達) 그룹 회장이 올 초 영국 여행을 했을 때 그는 베이징에 있는 영국대사관에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영국대사관 직원이 직접 왕 회장을 찾아와 신청서와 지문, 사진 등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챙겨 갔다. 이러한 비자 서비스에 대한 대가는 충분했다. 왕 회장은 영국 방문 후 요트 제조사 선시커를 3억파운드에 매입했고 런던 부동산에 7억파운드를 투자했다.
까다로운 비자 발급으로 중국인을 홀대했던 미국, 유럽 등 서방 선진국이 최근 비자 발급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중국인 모시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 보도했다.
중국인은 독일,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돈을 가장 잘 쓰는 관광객이 됐다. 영국 카드결제 서비스업체 월드페이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 관광객 8300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행지에서 5000달러 이상을 썼다. 특히 이들은 값비싼 명품류 구입에도 관대해 세계 명품 매출의 25%는 중국인 손에서 나올 정도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계 각국 정부는 비자 정책을 손보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비자 정책 변화를 약속한 곳은 영국이다. 영국은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간소화 정책을 발표하고 비자 발급 기간을 현행 1주일에서 24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또 일부 선택된 여행사들에는 유럽 25개국을 방문할 수 있는 '쉥겐 비자(Schengen Visa)'와 같은 양식의 간단한 신청서로만으로도 영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영국을 방문하려면 10장이 넘는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영국을 방문한 중국인 수는 18만명에 그쳤다. 쉥겐비자를 통해 입국이 가능한 프랑스의 120만명과 큰 차이다. 영국 명품업체들은 중국인이 영국 관광을 외면하고 있다며 수년 전부터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부에 비자발급 절차 간소화를 촉구해왔다.
미국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불편한 비자 발급 절차를 수정했다. 올해까지는 유선상으로 비자 발급 예약을 받지만 내년부터는 온라인에서도 예약이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 비자 발급 수량도 대폭 늘렸다.
재정위기에 허덕이고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키프로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중국 부자들을 겨냥해 자국 부동산을 사들이는 해외 투자자에게 '골든 비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과 태국도 최근 상호 비자 면제 정책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 이주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H&P)가 최근 세계 각국의 여행비자 면제국 운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인이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와 도시는 44개에 불과하다. 서방 선진국과 아시아 주변국 대부분이 비자 없이 여행이 불가능하며 중국령인 홍콩과 마카오를 방문할 때도 별도의 양식이 필요하다.
중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일부 해외 지역은 중국인이 몰리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2008년 이후 중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한국의 제주도는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168만명 가운데 3분의 2가 중국인일 정도다. 인도양 섬나라 몰디브에서는 중국인이 해외 관광객 가운데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모리셔스도 지난해 중국인 2만명이 다녀가 그 수가 1년 전보다 77% 급증했다.
중국 정부는 세계 각국의 비자 발급 규제 완화 효과로 내년에 중국을 빠져나가는 중국인 해외 관광객 수가 1억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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