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담장 위로 샛노란 병아리가 총총걸음을 거닐고 그 뒤로 암탉이 병아리들을 보살피며 의젓하게 서 있다. 또 다른 담장에는 들국화와 나팔꽃이 곱게 피어났고 따사로운 햇살을 향한 해바라기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 그림을 지켜보는 주민들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폈다. 동네 꼬마 녀석들은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물감도 만져 보고, 붓도 건드려 보며, 꽃처럼 변해 가는 골목 곳곳에 해맑은 웃음을 더하고 있었다.
벽화 그리기가 한창이던 '암탉 우는 마을' 현장을 격려의 명분으로 찾았지만 정작 위로받고 격려받은 건 나 자신이었다. 소외된 채 움츠려 있던 한 마을이 공동체라는 따뜻한 손길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단체장으로서의 소명이 더 막중하게 다가왔다.
'암탉 우는 마을'로 거듭난 지역은 시흥재정비촉진지구로, 좁은 골목길과 노후한 주택들이 많아 여성과 아동 안전에 매우 취약한 곳이었다. 골목은 좁고 어두워 낮에도 지나가기 꺼려지고 주택들은 오래되다 못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노후도가 상당했다. 담장마다 쌓여 있는 연탄재, 코를 찌르는 음식물 찌꺼기와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사람 대신 동네를 채우고 있었다. 단절되고 망가진 공간만큼이나 동네 사람들의 마음에도 큰 벽이 있었다. 도시 안에 섬처럼 고립된 이곳을 '여성과 아이가 안전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동네 반장 할머니 주선으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주민들이 제일 원했던 것은 마을 청소와 자투리 땅을 활용한 공동텃밭 일구기였다. 동네가 언제, 어떻게 개발될지 알 수 없지만 사는 동안만큼이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텃밭의 장소로 낙찰됐던 '공동버림구역'은 거대한 쓰레기장 그 자체였다. 대청소를 끝내고 하얗게 단장한 마을 곳곳 담장에 벽화를 그렸다. '희망브리지봉사단'과 '숲지기강지기' 회원들, 동일여고 미술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붓을 잡아주었다.
상자텃밭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수로도 말끔하게 정리해 일군 공동텃밭, 동네 사람들의 공동양식 창고가 된 그곳에 상추와 고추, 배추까지 심으면서 마을 사람들 얼굴에 말간 웃음도 심을 수 있었다.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두 곳의 기업과 '사랑의 보일러 나눔' 민간봉사단, 금천구 희망복지지원단이 보일러를 무상점검, 수리하고 교체해준 덕분에 취약계층 52가구가 따뜻한 겨울을 준비할 수 있었다.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몇 년째 세입자를 들이지 못하던 조남순 할머니, 사업이 잘 돼 방이 나가면 '한턱 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업이 진행되는 중에 1, 2층 모두 세입자를 맞이했다. 이제 이 마을에서 빈방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더 이상 악취와 벌레로 창문을 닫고 지낼 일이 없다. 날씨가 좋으면 양지바른 텃밭 벤치로 향하고 날씨가 궂으면 조남순 할머니네 마루로 모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제는 위험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은 동네를 마음껏 활보하며 눈빛과 말,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공동체를 회복한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암탉 우는 마을' 탄생을 지켜본 주변 이웃들이 마을만들기에 동참하고 싶어 했다. 그 염원으로 올 2월 마을 어귀에 '암탉광장'이 조성됐다. 20년째 유야무야 자리만 지키던 방범초소를 리모델링해 동네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그 주변을 녹지화 했으며, 벤치와 아고라 등 가로시설을 설치해 동네 쉼터로 꾸몄다. 이곳 광장에서 매월 한 번 '암탉장날'이 열린다. 손재주 많은 할머니들이 천연미용비누, 수제가방, 밑반찬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그것이 이제는 '민들레워커'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이 돼 안전행정부에서 지원하는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민의 의지와 참여, 직원들의 노력으로 희망을 선사해 준 '암탉 우는 마을'. 삶을 바꾸는 마을만들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차성수 금천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