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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1장 뒤꼬인 사랑의 방정식(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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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1장 뒤꼬인 사랑의 방정식(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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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관 선생은 다시 눈을 감았고, 한동안 방 안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사방에 가득 쌓아놓은 오래된 책 냄새와 차향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하림은 그들 둘 사이에 자기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았다. 더 이상 알 수도 없었고,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남경희의 말투나 눈빛에서 막연한 믿음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바람 불던 밤, 저수지에서 만난 이장 운학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하림은 왠지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일 그녀가 수관 선생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될 터였다. 그와 수관 선생은 달라도 너무 다른 과였다. 한 사람은 냉정 그 자체였다면 다른 한 사람은 열정 그 자체였다. 냉정과 열정의 사이. 아니, 지성과 무데뽀 사이.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선택은 너무나 자명할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러니까 이장 운학의 사랑의 운명 역시 너무나 자명할 것이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 하림 자기가 나서서 도와주고 자시고 할 건덕지도 없었다. 운학이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나도 알아요. 나도 알지만.... 내 마음인들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겠소. 멀리서 그녀가 걸어오는 걸 보면 가슴이 저절로 소리내어 뛰곤 해요. 이 나이에 말이우. 그래선 안 된다고 다잡으며 술도 마시곤 했지만 술이란 놈이 들어가면 더더욱 그녀가 눈앞에 얼쩡거리지. 환장할 정도로 말이우.’

그리고, ‘사실 난 그녀가 이 동네를 떠날까봐 두려워요. 그녀 아버지 영감이야 어찌 되었든 난 그녀가 가까이 사는 것만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나완 달라요. 다들 그녀 부녀를 쫒아내지 못해 안달이 나있쥬.’ 하고 쓰디쓰게 내뱉었었다. 그런 판에 무엇을 도와준단 말인가. 더구나 그녀의 마음이 딴 곳에 가있었다는 것을 하림은 오늘 처음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아닌 것만큼 머리가 복잡해지는 법이다. 하림의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한동안 자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수관 선생이 먼저 입을 열어,


“그래, 소연이 한테는 시를 가르쳐주기로 했다면서요?” 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아, 예.....?” 하림은 순간 허를 찔린 듯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갑자기 하소연이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잘 했소. 내가 대신 고맙다고 해야 하나..... 불쌍한 아이요.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아버지는 재가를 하여 떨어져 살고 있어요. 그 애 엄마랑은 같은 동네에서 어릴 때 같이 자랐지요. 그 앤 자기 엄마를 많이 닮았다오. 재능도 있고.....”


“아, 예.....” 하림은 괜히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뭘 알고 하는 소린지 그냥 하는 소린지 잘 짐작이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소연이가 자기 이야기를 수관 선생에게 한 것은 분명했다. 그러자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처럼 갑자기 소연이 걱정이 되었다. 풍으로 쓰러진 사촌언니를 따라 엠불런스를 타고 가던 뒷모습이 안쓰럽게 떠올랐다.


‘조심해서 다녀와!’ 그녀의 등에 대고 자기가 한 소리가 어느새 울림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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