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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문정희의 '치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7초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허무한 동굴?/놀라운 것은/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문정희의 '치마'


■ 여성성에 대한, 이 시인의 빛나는 통찰은 신선하고 경쾌하다. 에두르지 않는 돌직구로 할 말 다 하면서도 격조를 유지하는 솜씨를 배우고 싶지 않은가. 남자들의 욕망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에는 웃음이 돋는다. 은근슬쩍 성적인 은유들이, 슬금슬금 엿보는 눈을 돋우며 치마가 가린 위대한 상징을 신화적이고 세계적으로 보여줄듯 말듯 하더니, 마지막 행에서 그것을 홱 벗어제친다. 자 똑바로 봐라, 하는 듯이.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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