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이하 연준) 차기의장 감으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이 자진 사퇴함으로써 재닛 옐런(Janet Yellon.사진 아래) 부의장이 후보들 가운데서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옐런은 단순히 연준 부의장이어서가 아니고 물가안정을 맹신하는 연준 내 고위 공직자와 달리 물가안정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실업타파에 누구보다 앞장서 주장해온 인물이어서 현 미국 경제 상황에서 적임자로 꼽힌다고 말해도 가히 지나치지 않다. 미국의 실업률은 많이 하락했다고 하나 8월 7.3%를 기록했다.
그녀는 양적완화는 2조3000억달러 규모의 두 차례의 양적완화로 300만개의 일자리가 증가했다며 양적완화를 지지한 인물이다.
과연 그녀는 어떤 자격을 갖췄기에 CNN머니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그녀를 밀고, 가시 돋힌 비판을 하는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폴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마저 그녀 외에는 딴 인물이 없다고 할까?
우선 그녀의 자격은 훌륭하다. 옐런은 올해 66세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하다. 귀가 순해 들을 만큼 듣는 나이인 60을 넘겨 미국 재계와 정계, 금융계의 싫은 소리를 들을 법한 나이에 올랐다.
무엇보다 똑똑하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 세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문을 두드리는 명문 아이비리그대학인 브라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에 더해 그녀는 하버드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또 연준 경력도 있다. 벤 버냉키 현 의장이 취임했을 당시 연준 이사로 3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엘런 그린스펀 전 의장도 연준 경력이 전혀 없이 의장직에 올랐다.
그렇지만 그녀는 연준 국제부문에 취직해 남편을 만나 1978년 7월 결혼했다. 남편은 정보 불균형과 관련해 중고차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설명한 ‘레몬이론’으로 2001년 노벨상을 탄 조지 애컬로프다. 한마디로 부창부수다. 2004년에는 연준은행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연준은의 의장에 취임해 2010년까지 훌륭히 역할을 수행했다.
외국 물도 먹었다. 그녀는 런던 정경대에서 2년을 보냈다. 학계 경력도 풍부하다. UCLA 교수 노릇도 했다.
무엇보다 기대를 모으는 것은 노동시장을 보는 그녀의 눈이자 철학이다. 그녀는 재난 시 특히 노동시장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정부 역할론을 신봉한다. 어디서 본 듯한 ‘꼬리표’가 붙는다. 바로 케인지언이다. 우리 말로 케인즈주의자쯤 된다. 제임스 토빈 교수가 케인즈 경제학을 설파한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04년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당시 남편과 함께 쓴 논문에서 중앙은행은 장기실업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그녀다.
이 부부는 “전체 실업률이 높을 때 장기실업의 심각한 비용을 감안해 정책당국자들은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의 역할론을 주문한 것이다.
연준이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험프리 호킨스 법(Humphrey Hawkins Act) 작업을 한 예일대 박학위자인 제임스 갤브레이스는 블룸버그에 “토빈과 동문 수학한 사람들은 정부는 민간 경제의 불능을 상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옐런 부부는 노동시장에 대한 논문 10여편을 공동으로 집필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은 근로자가 공정하게 임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가 국가 실업률에 영향력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논란을 초래한 논문이었다.
그녀의 생각은 1999년 4월 예일대에서 한 연설에서 읽을 수 있다. 옐런은 연설에서 “개입 없이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 고용을 할 것인가? 분명히 아니다”고 단언했다.
미국의 고용사정을 본다면 옐런의 견해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실업 통계는 개선됐으나 장기실업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실업자중 실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 비율은 39.6%로 나타났다. 이는 사상 최고치인 2011년 3월 45.3%에 비하면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7년 17.4%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이나 높은 것이다.
장기 실업의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경제활동인구의 소득감소는 구매력 감소와 이에 따른 지출감소, 국가 전체의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능력과 의사가 있는 실업자들의 인간성 황폐화와 무기력, 가정불화 등 심각한 사회문제의 불씨가 된다.
케인스주의자인 크루그먼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실업 장기화는 구직자를 무능하거나 ‘아무도 사지 않으려는 더러운 물건’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일갈한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옐런의 시각은 이런 점에서 벤 버냉키(사진위) 현 FRB 의장과 첨예한 대조를 이룬다. 버냉키 의장은 고용보다는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MIT대학 대학원생과 프린스턴대 교수시절 중앙은행의 정책오류가 침체를 악화시킨다는 데 집중했다. 버냉키는 20006년 연준의장으로 한 첫 연설에서 “안정된 물가가 정책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밝혀 물가안정에 주력할 뜻을 분명히 했다.
버냉키의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주니어를 신봉하는 경제학파의 ‘합리적 기대’ 가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합리적 기대 가설은 가계와 기업이 거의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어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한다고 본다. 정부개입과 정책오류와 모호함은 효율적인 가격결정과 신용과 투자할당을 방해한다고 믿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냉키는 1999년 영국은행 통화정책위원을 역임한 애덤 포슨 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 프레드릭 미시킨 컬럼비아대 교수, 토마스 로바흐 연준 이사회 이코노미스트와 공저한 책에서 “통화정책 입안자가 낮은 인플레이션을 제 1의 장기목표로 삼을 때, 어느 정도는 통화정책이 할 수 있고 없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서 “결국 중앙은행은 오로지 인플레이션에만 영향을 줄 수 있지 총생산과 같은 실물 변수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옐런은 연준 이사가 된 1995년 초 인플레이션 목표를 우선으로 삼는 견해를 일축하고, “최대 고용과 낮고 안정된 물가는 균형있게 추구돼야 한다”고 주장해 버냉키 등에 반기를 들었다.
옐런은 1995년 인플레이션 목표제 토론 당시 “목표가 상충하고 힘든 교환을 요구할 경우, 내 생각에는 현명하고 인간적인 정책은 인플레이션이 목표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오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이후 연준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등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어찌보면 옐런의 말발이 연준내에서 먹혀들어 물가안정론자들이 수긍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연준 FOMC는 옐런이 근 20년 전에 내린 처방 즉 물가가 같은 해 1월 발표한 2% 목표를 넘어 2.5%를 돌파하지 않는 이상 실업률이 6.5%로 떨어질 때까지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옐런의 주장이 설득력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상원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서머스(사진 위)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협공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7월 민주당 상원에서는 그녀가 버냉키를 이을 적임자라고 지지하는 서한이 나돌기도 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 대표는 지난 7월25일 “최초의 여성 의장을 선출하는 것은 대단할 것”이라면서 “그녀는 굉장한 자격을 갖췄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WP)SMS 16일(현지시간) 옐런의 화려한 연준경력,실업해결 적임자,정치적 중립성향,첫 여성 의장의 의미, 탁월한 경기예측 등 옐런을 지명해야 할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이런 자질을 갖춘 옐런이기에 서머스가 자진사퇴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을 보인 것이다. 주가는 오르고 자본 유출로 하락 일변도인 아시아 통화도 반등하기도 한 것이다.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조시 배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을 좋아하고 상원이 그녀를 인준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충분하다”면서 “서머스와 달리 공화당의 방해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남은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 뿐이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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