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아직 제로톱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앞으로 활용 가능한 하나의 옵션 정도로 여기고 있다."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이 새롭게 꺼내든 제로톱 카드에 대한 속내를 솔직히 털어놨다.
대표팀은 6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아이티와의 평가전에서 4-1 대승을 거뒀다. 손흥민이 멀티골을 터뜨렸고, 구자철과 이근호가 각각 페널티킥 골을 넣으며 승리에 힘을 보탰다.
홍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유럽파가 처음 합류했고, 좋은 경험이 될 만한 경기였다"라면서도 "수비진의 대처가 썩 좋지 않았고, 우리만의 패턴과 리듬을 타고 경기를 하지 못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리 팀에 필요한 건 승리였고 골이었다"라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다"라고 평했다.
이날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지동원을 빼고 구자철을 내세웠고, 후반 31분에는 이근호 대신 김보경을 투입했다. 공격수 없이 미드필더만으로 공격진을 구성한 '제로톱 전술'이었다. 앞서 "난 제로톱을 모른다"라고 밝혔던 홍 감독이었기에 더욱 의외의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점수 차가 벌어지고, 수적 우위까지 점하며 경기가 느슨해져 시도해봤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우리가 완벽하게 제로톱을 구사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라며 "구자철·김보경도 원톱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하나의 옵션 정도로만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라고 덧붙였다.
두 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손흥민에 대한 뒷이야기도 전했다. 홍 감독은 "손흥민에겐 경기 들어가기 전 직접 교체를 요구하기 전까지는 빼지 않겠다고 얘기해줬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대표팀에서 많은 출전 시간을 얻지 못했기에 기회를 주고 싶었다"라며 "본인 스스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팬과 동료들에게 보여줬다"라며 호평했다.
이하는 홍 감독의 기자회견 전문.
-경기 소감은?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줬다. 그동안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준비를 했고, 이번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도 처음 합류했다. 다른 걸 떠나 우리 팀에 좋은 경험이 된 경기였다. 물론 다른 경기에 비해 빠르고 강한 선수들을 상대로 한 수비진의 대처가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좀 더 강한 상대와 만났을 때를 대비해, 선수들이 수비에 있어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 된 점을 꼽는다면.
전반 선취골을 넣기 전까지의 압박은 잘 됐다. 반면 이후 경험적인 면에서 미숙함을 드러냈다. 선제골을 넣은 뒤에도 우리만의 패턴과 리듬을 타고 경기를 했어야 했는데, 전체적으로 모든 라인이 쳐지다보니 상대에 공간도 내주고 기회도 허용했다. 전반에 실점한 건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결과였다.
-골도 많이 나왔고, 페널티킥에 상대 선수 퇴장까지 나왔다.
우리 팀에 필요한 건 승리였고 골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후반에 수적으로 같은 상태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상대 선수가 퇴장을 당하면서 경기력 면에서 조금 느슨해졌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우리 팀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
-경기 도중 제로톱을 시도했던 것 같은데
지동원이 생각보다 몸이 굉장히 무거웠다. 이근호가 좀 더 낫다는 생각에 후반 들어 이근호를 원톱으로 올리고 구자철을 밑에 놨다. 또 이근호의 운동량이 많아서 지친 기색이 있을 때 김보경을 투입했다. 그 뿐이다. 사실 우리가 완벽하게 제로톱을 구사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오늘처럼 느슨한 경기에서 시도해볼만하다. 구자철도 김보경도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은 익숙하지만, 원톱에 섰을 땐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하나의 옵션 정도로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
-이청용-손흥민의 활약에 대한 소감은?
두 선수 모두 좋은 활약을 했다. 각자 개인 능력도 좋았지만, 이들을 받쳐준 동료들과 함께 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손흥민에 대해선 경기 들어가기 전 직접 교체를 요구하기 전까지는 빼지 않겠다고 얘기했었다.
-손흥민에게 특별히 출전 시간을 부여한 이유가 있었나?
확실히 어떤 임무를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손흥민은 대표팀에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되도록 오랜 출전 시간을 주고 싶었다. 수비적인 면에서도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팬과 동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공격진 구성에 있어 생각 중인 다른 옵션도 있나?
여러 가지 생각이 있다. 다만 지금 뭔가 말하기엔 시기상조다. 내년 전반기까지 상황을 죽 지켜본 뒤에 결정할 문제인 것 같다.
-크로아티아전 선수 구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지난 동아시안컵처럼 대폭 선발 명단이 바뀔 수도 있을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남은 이틀 동안 선수들의 회복 속도를 지켜볼 생각이다. 동아시안컵 당시엔 유럽파가 없었다. 감독으로서 '이 팀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했고, 결론은 미드필드-수비 조직력이었다. 그러다보니 골도 터지지 않았고, 유럽파가 합류하며 골을 넣었다. 이젠 모든 포지션이 경쟁이다. 가장 좋은 경기력과 컨디션을 보인 선수를 다음 경기에 투입할 생각하다.
-네 골이 터지는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경기력에 대한 불만 혹은 심판 판정에 따른 겸연쩍음 때문은 아니었나?
(웃음)그렇진 않다. 감독은 이기면 좋고 골 들어가면 좋은 법이다. 하지만 경기 내용 전반을 봤을 때 득점 이후 경기력은 이전 경기와 비교해 썩 좋지 않았다. 후반전에는 페널티킥을 두 개나 얻고, 상대 한 명이 퇴장당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 때문에 우리가 좀 더 나은 경기를 할 수 있는데도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랬다.
전성호 기자 spree8@asiae.co.kr
정재훈 사진기자 roz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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