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소방관의 기도(Firemen's Prayer)'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지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사고 당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 걸려 있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감동을 줬던 이 시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에서 나레이션으로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다시 보고 또 듣고 싶지만 현실과 맞닿아서는 회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시가 지난달 17일 경남 김해시 생림면의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한 소방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또 한번 많은 이들을 울렸습니다.
화재발생 신고를 받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간 고(故) 김윤섭(33.소방교) 소방관. 김 소방관은 폭염에 시달리면서도 두꺼운 소방복을 입고 5시간 넘게 진화 작업을 하다 과로와 복사열에 의해 탈진해 쓰러졌습니다. 사고를 모른 채 잔불을 정리하던 동료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15m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쓰러진 김 소방관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김 소방관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죽음이 슬픔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지만 소방관들의 죽음에 유독 많은 사람이 특별한 감회를 갖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서 남의 생명을 구해야만하는 운명적인 직업적 특성때문일 것입니다. 남들은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데 오히려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소방관들의 헌신성은 언제나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도 남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한 '영웅'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웅'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를 놀라게합니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소방방재청이 제출한 '16개 시도별 취사차 및 폐쇄텐트 보유현황' 자료를 검토한 결과 4만명 소방관의 식사와 휴식을 책임질 취사차와 폐쇄텐트는 각각 5대와 127동에 불과해 소방관들은 제대로 된 식사와 휴식은 꿈도 꾸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2011년 16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사건 발생 당시 길 위에 앉아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쉬고있는 소방관들의 사진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소방관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했습니다.
인력부족과 장비 문제도 심각합니다. '살인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하루 24시간 맞교대에다 여전히 노후화 된 장비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하는 게 소방관들의 현실입니다.
국민의 목숨을 구하기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에게 언제까지 희생과 인내를 강요해야 하는 걸까요. '영웅'들이 그 칭호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합니다.
"무겁고 아팠던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하늘의 불새가 돼 우리와 함께하길…"
김윤섭 소방관의 영결식에서 마지막 현장에 함께 있었던 동료가 눈물 범벅인 채로 읽어내려간 추도사의 한 구절입니다. 김해로 전입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매사 가장 먼저 달려가는 성실함으로 동료들이 좋아했다는 김 소방관.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경훈 기자 styxx@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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