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K리그 최다 우승 팀이란 흔적마저 사라진다는 게 아쉽다."
"현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건 무의미하다."
존폐위기에 몰린 성남일화가 역사 계승과 새 출발이란 명분 속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해체만은 막아야한다는 원칙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방법상의 문제를 두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남은 24년간 구단을 운영해 온 모기업 통일그룹이 재정 지원 불가 입장을 통보하면서 올 시즌을 끝으로 '미아'가 될 위기에 처했다. 대안으로 1999년부터 연고지로 몸담은 성남시에 구단을 매각, 시민 구단으로의 전환을 모색했으나 지난 7월 협상은 결렬됐다. 접촉 단계부터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았던 카드였다. 연간 150억 원에 달하는 운영 자금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축구단 운영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팽배했다.
사실 성남시와 함께한 14년간의 행보는 불편한 동거나 다름없었다. 2006년을 포함 K리그 7회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2010년)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으나 제대로 된 연습구장조차 확보하지 못해 수도권을 전전해야 했다. 종교 색에 대한 거부감으로 구단 마케팅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뒤따랐다. 팀 해체란 수순을 피하기 위한 시민 구단 전환마저 무산되며 시의 무관심한 처사를 성토하는 팬들의 원성은 빗발치고 있다.
답답하긴 구단 입장도 다르지 않다.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24일 울산전 직후에는 박규남 단장이 기자회견을 자청, "그동안 다져진 기반과 팬들의 애정을 고려할 때 성남시에서 구단을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팀이 해체되지 않고 시민 구단으로라도 연계될 수 있도록 주위에서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 가닥 남은 희망은 인수 의사를 내비친 안산시와 손을 잡는 일이다. 프로축구단 창단에 대한 의지가 맞물리면서 그간 물밑에서 매각 절차를 진행해왔다. 양 측 모두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메인스폰서 유치, 고용승계 등 세부절차만 남았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다만 안산 시민 구단으로의 전환이 연고지 이전이 아닌 신규 창단이란 점은 분명한 걸림돌이다. K리그 최다 우승을 비롯한 화려했던 구단 역사를 존속할 명분이 사라지는 까닭이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팬들을 비롯한 일부 구단 관계자들은 여전히 성남시 잔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생존을 위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단 지적도 있다. 감성에 치우쳐 그나마 남은 가능성마저 저버릴 수 없단 판단에서다. 안익수 성남 감독은 "과거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선 구단 존속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며 "우리 팀의 경쟁력을 높여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성남 서포터스는 연고지 잔류를 목표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면담 요청은 물론 포털사이트와 성남시청, 성남시 의회 게시판에 성토의 글을 남기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 서명 운동 등 단체행동까지 불사하겠단 방침이다.
박 단장을 비롯한 구단 수뇌부 역시 성남의 명맥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박 단장은 "모든 상처를 감내하고 어렵게 이곳에 정착했다. 그동안 성남시나 시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불행한 상황에 놓였지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다"며 애정을 표현했다. 정철수 사무국장 역시 "팬들의 염원도 있고 성남시의 명확한 입장을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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