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검찰이 법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원 전 원장은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개인과 단체들에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등 신종 매카시즘의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에서 검찰은 기소요지 모두진술을 통해 이같이 말하며 “원 전 원장은 재임기간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정치관여를 지시했으며 드러난 정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개한 원 전 원장의 발언에 따르면 그는 2011년 전체 부서장 회의에서 “인터넷 자체를 종북좌파 세력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는데 우리가 이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안 세우고 있었다.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는 자세로 그런 세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그가 기획한 인터넷을 상대로 한 여론전이 국가정보원법상 직무범위를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대북심리전을 명목으로 인위적 여론조작을 하며 일관되고도 반복적으로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리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은 국정원 존재 이유에 상충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광우병 촛불사태 등을 통해 사이버 여론형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사이버팀을 총 4개로 구성, 70여명의 직원을 두는 등 사이버활동을 강화했다. 특히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활동을 강화했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지지·홍보하고 이를 반대하는 야당·시민단체를 종북좌파로 지목하는 동시에 공박하도록 했다”면서 “이는 국정원법상 불법 정치관여(국정원법 위반)에 해당하며 선거정국에선 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한 불법 선거운동(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2012년 2월 부서장 회의에서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는데 종북좌파들은 북과 연계해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지난해 총선 직후엔 “종북좌파 40여명이 여의도에 진출했는데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흔들 것이다. 전직원이 혼연일체돼 준비해 주길 바란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의 종북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이는 그의 발언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대선 관련 게시글을 73건, 총선 관련 글을 32건 올리는 등의 행태를 보였는데 특히 대선 관련 글은 그 중 37건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반대하는 내용, 32건이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를 반대하는 내용, 4건이 안철수 후보를 반대하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일관되게 야당과 야당후보를 반대하는 글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모두진술을 마무리하며 엄정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국정원장의 지위를 활용해 사이버 여론조작을 함으로써 정치에 관여해 국정원법을 위반했고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원 전 원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반헌법적 행태를 보였다. 또 소중한 안보자원을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사유화했으므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첫 공판은 오후에 이어서 진행되며 오후엔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이 의견을 표명할 예정이다. 다음 공판은 내달 2일 열리며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의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