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업계의 해외진출이 다시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 금융산업이 어려워질 때마다 '해외진출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개척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어 왔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해외진출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시아 금융산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홍콩 진출만 해도 '국내 금융기관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홍콩에 진출한 우리 금융기관들은 실패, 적자, 그리고 구조조정 등의 단어로 점철되는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증권이 야심 차게 신설했던 홍콩법인에서 1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결국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고 홍콩법인 규모도 크게 줄어드는 과정을 겪었다. 이는 업계에 '삼성증권이 이런 정도면 우리는…'이라는 두려움을 안겨 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진출했던 국내 금융기관들도 줄지어 철수하는 뼈아픈 경험도 했다.
외국계 금융기관 CEO로부터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국 제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글로벌 리딩기업이 등장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금융업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름대로 답변을 준비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한국 경제 발전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상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했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이 목표였으며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제조업체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수출에 눈을 돌렸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했다. 제조업의 키워드는 수출과 경쟁이었다.
반면 금융은 수출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정책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다 보니 정부의 개입이 늘 있었고 자립이나 발전은 거리가 멀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규모 공적자금까지 투입했고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커졌다. 금융업의 키워드는 관치와 규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금융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답은 나와 있다. 제조업체가 그랬던 것처럼 금융업계도 해외진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성공 사례도 있다. KDB대우증권의 사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우증권 사례가 주는 교훈은 첫째,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1994년 1000만달러로 시작해 수차례 증자를 통해 덩치를 키웠고 올해 3억달러로 성장했다. 3개년 진출계획을 세우고, 손실 나면 철수하는 '단기 업적주의'로는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둘째, 단계적인 진출전략이 주효했다는 점이다. 홍콩법인이 해외영업 컨트롤타워로 역할을 하면서 인도네시아, 몽골 시장으로의 단계적 진출을 시도했다. 2007년부터 6년 동안 인도네시아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딩증권 지분을 단계적으로 사들여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세계 7대 자원 부국인 몽골 진출도 눈에 띈다. 대우증권은 이미 몽골 개발 위탁운영을 통해 몽골의 산업, 금융에 대해 지식과 경험을 쌓은 상태여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우증권의 성공 경험은 국내 금융업계에 더없이 중요한 자산이다.
이 대목에서 삼성증권에 당부하고 싶다. 삼성그룹에 전자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후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서 돈다. 대한민국에 제조업만 있고 금융이 없는 것과 닮은꼴이다. 홍콩에서의 실패 사례 때문에 해외진출에 위축되지 말고 원인과 대비책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금융업에서도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높여 주기 바란다. 성공과 실패는 서로 멀리 있지 않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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