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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형권의 '삭금포구에서'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39초 소요

삭금을 물어보지만/아는 이가 없다./밤 갚은 여자 만(灣)/외등 불빛 줄지어/어둠 속에 떨고 있는데//초행길 나그네는/술잔을 들이키고/다시 묻는다/언제 적부터 삭금이었느냐고/바람소리는 벌써/저승으로 가버린 사람처럼/아득한하다//아낙의 고향은/바다 건너 약산이란다/갯벌이 막히면서부터/스무해 째 된장물회를 판다는/손끝에서/시큼한 해초냄새가 번졌다(...)


이형권의 '삭금포구에서'중에서


■ 포구에는 경계(境界)의 냄새가 있다. 익명의 포구는 툭 터져 버린 바다를 가리키며 부끄럽게 주저앉은 뭍이다. 눈썹에 흔들리는 수평선 한편에 사물거리는 것들이 있고 입속에 꼬물거리는 해물들이 꿈꾸는 바다가 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삭금포구는 그래서 막 이제 이름이 돋아나는 첫날처럼 진흙 속에서 작은 구멍과 기포 같은 것으로 엎드리고 있다. 떠돌이는 뭍을 바다 삼아 떠돌다 여기 포구에 닿았다. 이제 바다로 갈 것도 아니다. 뭍의 바람과 파도에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삭았고 인생은 심각하게 금이 갔다. 그래서 삭금포구이던가. 된장물회에는 곰삭은 뭍과 비릿한 바다가 포구처럼 버무려져 있다. 바다 부근에서 바라보면 인생은 다 똑같다. 슬픔도 슬프지 않지만 기쁨도 기쁘지 않다. 그저 한 이랑의 파도가 이룬 지붕과 골짜기처럼 넘실거리는 먼 풍경일 뿐이다. 떠돌이는 하룻밤 귓속에 파도소리를 집어넣을 것이지만 아침이면 또 떠난다. 어부들이 지상의 배를 채우러 배를 미는 것처럼, 아침이면 세상바다는 늘 떠나는 풍경이 있다. 인생은 슬픈 하룻밤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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