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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중의 乙, 감정노동자의 전화응대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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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커머스 고객상담소 현장르포

희롱·욕설…하루 7000통 전쟁
맘 놓고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
대낮 성희롱 전화도 끊이지 않아

乙중의 乙, 감정노동자의 전화응대 애환 지난 26일 찾은 한 소셜커머스 고객상담센터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100여명의 직원들은 담당영역을 맡아 오전 10시부터 오후7시까지 1일 약 7000통 1인당 80여통 가까운 상담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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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야 너 말고 상급자 바꿔. 내가 너랑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줄 알아?"

수화기 너머 차가운 말투에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A씨는 이런 전화가 하루에도 몇 십통씩 걸려 온다고 토로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그는 담배를 들고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감정노동자의 애환을 듣기 위해 지난 26일 오후 5시 찾은 소셜커머스 업체의 고객상담센터. 건물 4층에 위치한 약 210㎡(70평) 규모의 상담센터엔 식품, 의류, 여행, 배송 등 각 영역별로 나뉜 상담원 100여명이 쉴 새 없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A씨는 이곳에서 식품ㆍ배송 영역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어느 영역보다 강성고객이 많은 곳이다.

A씨가 금세 자리에 돌아왔다. 그는 "오전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며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대기콜이 밀려 업무가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상담센터 한켠 전광판에 6980이라는 숫자가 써 있었다.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 횟수였다.


상담원 한 명이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처리하는 콜은 80통 정도. 할당된 횟수는 없지만 센터에서 정한 전체 응답률 97%를 유지하려면 하루종일 꼼짝 없이 자리에 붙어 있어야 한다. 업무 시간이 끝나도 잔업이 있어 퇴근은 보통 10시쯤 한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헤드셋을 다시 썼다. 5초도 안 돼 전화가 연결됐다. 일주일 전 주문한 상품이 아직도 배송이 안됐다며 항의하는 고객이었다. "장난하냐. 이렇게 돈 벌고 싶느냐"며 반말 섞인 욕설이 한 차례 지나가고 A씨가 차근히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상품은 해외배송 상품이어서 공지한대로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고 확인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5분여 통화에 A씨가 '죄송하다'라고 말한 횟수는 15회. 말의 시작과 끝이 '죄송하다'였다. A씨는 "화가 난 고객들을 진정시키려면 말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홈페이지 화면만 제대로 읽어도 해결되는 문제인데 무작정 전화해서 따지는 고객들을 대응하고 나면 한순간에 맥이 풀린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이런 업무 관련 전화는 괜찮다는 자조 섞인 설명도 이어졌다. 상담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성적 농담을 하는 전화도 많이 걸려온다는 것. 그는 "술에 취해 낯부끄러운 전화를 하는 고객들도 많다"며 "그런 전화를 받으면 내가 뭐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사무금융노조연맹에 따르면 고객상담센터 직원 57%가 고도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중증도우울증을 겪고 있는 직원도 14.19%나 된다. 이달 초엔 서울의 한 백화점 협력업체 직원이 심한 우울증에 자살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고객상담 직원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은 딱히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영역에서 14년째 몸담고 있는 센터장 B씨가 "아직도 술과 담배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A씨는 통화를 하면서 모니터 바탕화면을 이유 없이 수차례 드래그했다. 마우스를 반복해서 클릭하는 직원도 볼 수 있었다. 다리를 떠는 것은 대부분이었다. 몇몇 직원의 책상 위엔 먹다 남은 두통약도 보였다. 심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불안증세 때문이라는 센터장의 설명이다.


근무환경이 좋지 않은데도 A씨가 버티고 있는 것은 직원 간 '정' 때문이다. A씨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아는 직장동료들이 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상담센터를 총괄하는 사측 관계자는 "합당한 급여의 제공과 함께 힐링 프로그램을 마련해 직원들이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민 기자 ljm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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