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상증자를 놓고 벌인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홀딩아게(Schindler Holding AGㆍ이하 쉰들러) 간 대결양상은 지난 2003년 불거졌던 SK와 소버린 간 경영권 분쟁을 연상케 한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5%를 보유한 2대 주주이고, 당시 소버린은 끳SK 지분 14.99%의 주식을 확보한 역시 2대 주주였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소버린 역시 초기에는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분쟁 초기 주주가치를 내세웠던 소버린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영권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SK 주주총회에서 SK 이사진 총사퇴, SK텔레콤 매각을 통한 재벌 구조 해체, 최태원 일가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SK경영권을 위협했다.
다행히 SK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자칫하면 정유사, 통신사 등 국가기간산업의 경영권을 외국 투기자본에 넘겨줘야 하는 상황을 맞을 뻔했다.
쉰들러의 최근 움직임은 소버린의 초기행보를 보는 것 같다는 점에서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목소리 내기를 자제했던 쉰들러는 최근 국내에 있는 홍보대행사와 계약을 맺고 현대엘리베이터 측의 경영권 위협론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쉰들러 회장이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영권에는 관심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소버린 역시 초기에는 한국에 있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경영권 위협과는 무관하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했다.
쉰들러의 이 같은 움직임은 주주가치를 내세우다 경영권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사전 여론작업을 했던 소버린의 행보와 일맥상통한다.
소버린이 투기 자본이고, 쉰들러는 세계 1위 엘리베이터 기업이라는 점으로만 본다면 경영권에 대한 관심은 쉰들러가 더 클 수 있다. 쉰들러는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곳곳에 산재돼 있는 기업 70개를 인수합병(M&A)했다. 쉰들러는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SK의 경영권을 정면으로 겨냥한 소버린과 닮은 꼴이다.
쉰들러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 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취득 이후 한국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최소화해 유지해 오고 있다"며 "이유는 한국 정부의 독점금지(antitrust)를 피하기(avoid) 위해서"라고 말했다. 독과점을 피하기 위해 점유율을 최소화했다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인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물며 법원도 주주가치를 내세운 쉰들러의 주장에 물음표를 찍었다.
법원은 쉰들러 측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 의사록 열람등사허가신청을 기각하면서 쉰들러의 행위를 '주주라는 지위를 내세워 현대엘리베이터를 압박함으로써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승강기 사업부문을 인수하거나 그와 관련하여 협상하는 과정에 보다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쉰들러가 주주가치를 내세워 2년 6개월째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에 발목을 잡기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 훼손된 가치는 없다. 평가이익을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쉰들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현대엘리베이터의 브라질 투자 등 중요한 기업활동에 차질을 빚게 하면서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소버린은 S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실패한 후 지분 전량을 매각, 8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이익을 거뒀다. 혹시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지만 실패하더라도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진실게임과 머니게임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소버린에 유린당한 아픔이 컸기 때문이다.
경영권이냐, 돈이냐. 의도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사회적 책임 못지않은 기업의 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노종섭 산업부장 njs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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