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일감·갑을, 기업잡는 '3단 옆차기'
해당법안 언급 최대한 자제·내부 인력 총동원 판세읽기 주력
여야 공감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FIU법 등 처리에 촉각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6월 임시국회가 3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30일간의 일정으로 개회되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해당 법안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내부인력을 총 동원, 판세 읽기에 주력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중점 처리하겠다고 나선 법안은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창조경제 법안을 포함해 110건 이상이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34개 법안을 우선 처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 4월 국회에서 보류돼 6월 국회로 넘어온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CJ 비자금 사태로 새롭게 부각된 '금융정보분석원(FIU)'법 등에 대해서는 여야간 공감대가 상당부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 재계는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를 적극 규제하겠다는 내용의 취지를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계열사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받았던 제품의 상당부분을 계열사가 아닌 다른 기업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현행법과 개정안 모두 '불공정거래행위(일명 일감몰아주기)' 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상적인 계열사간 거래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과도한 추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해당 법은 사실상 기업활동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라며 "개정안이 담은 '상당히 유리한 조건' 등의 내용은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적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기업 오너의 지분이 절대적인 관계사 또는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기업활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법무법인 소속 한 변호사는 "재계와 경제단체가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한 법안이 과도한 기업활동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해당 조항이 불공정거래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만큼 우려가 과도하다"며 현대차의 경우 광고 등의 일감을 이미 경쟁입찰을 통해 배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 스스로 판단해서 해소해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갑을관계' 청산 원년(?) =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의 또다른 이슈는 이른바 '갑을관계법'이다. 남양유업의 대리점주에 대한 비상식적 행위 등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민주당의 개정안 보다 새누리당 개정안의 강도가 더 세다.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 등이 제출한 법안내용은 최대 10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집단소송제 확대 시행, 하도급업체 또는 소비자의 직접 소(訴) 제기, 표준대리점계약서 작성 등을 담았다.
논란은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와 집단소송제 확대다. 손해배상 범위의 경우 6월 국회 이전 3~10배까지 다양하게 제시됐지만, 이후 정치권이 재계의 불만을 일부 받아들어 3배 배상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 법의 취지는 현저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이 중대한 법 위반 행위를 한 경우 '을'이 '갑'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해 종속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집단소송제는 '을'이 '갑'에 맞설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의 확대 시행에 따른 소 남용을 우려했다. 빈번한 소송이 기업의 활동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존 공정거래법 상 규정으로 규제할 수 있음에도 이번 개정이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의 경영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탁상입법"이라고 전했다.
이른바 '을'의 소 남용을 우려한 부분을 제외하고 재계가 해당 법안을 거부할 명분은 많지 않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갑을관계에서 을은 최소한의 법적권리 조차 주장하지 못했다"며 "원ㆍ하청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곧 이 개정안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진단했다.
◆시한폭탄 '통상임금'= 구체적인 입법안은 제출되지 않았지만 통상임금 문제를 둘러싼 공방은 이번 국회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현행 임금체계가 노사간 갈등을 유발했다는데 여야가 공감대를 갖고 있지만, 민주당은 대법원의 판례를 바탕으로 입법화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노사정협의 과정을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재계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노동계가 원하는 수준으로 맞추는 것은 기업 활동에 큰 부담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현재까지와 달리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할 경우 생기는 파장과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 돼 있다"며 "실증적인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한쪽으로 방향을 정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상여금과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최대 21조9000억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현재 기업의 추가 부담 규모를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각각 38조원과 5조원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정진호 연구위원은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고정상여금만 반영할 경우 기업은 14조600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이는 과거 3년 소급분 10조5000억원과 향후 1년 증가액 4조1000억원을 합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임철영 기자 cy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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