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르포]굳게 닫힌 통일대교 울리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절규

시계아이콘01분 59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입주기업 대표 임직원 200명 모여 정상화 촉구..일본 관광버스 통과 보며 눈물

[르포]굳게 닫힌 통일대교 울리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절규
AD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세상 어느 정부도 행복하게 일할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빨리 조건 없는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30일 오전 9시 30분 파주 통일대교 앞, 전국 방방곡곡에서 200여명의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와 임직원들이 모였다. 봉고차부터 승용차, 트럭까지 집결했다. 버스를 대절해 온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교 앞 바리케이트를 넘을 수 없었다. 바리케이트에는 '이 곳은 민간인 통제지역임. 사전 허가되지 않은 차량은 유턴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재원들이 바리케이트 앞을 서성이고 있는 동안 일본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 몇 대가 경찰들의 비호를 받으며 다리를 건너갔다. 관광객들에게 활짝 열린 다리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게는 꽉 닫힌 현실일 뿐이었다.


이 다리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개성공단 주재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나다녔던 길이다. 개성공단까지는 차로 불과 20여분 거리다. 관문에는 '통일의 관문, 통일한국의 중심도시 파주'라는 공허한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었다.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성공단 대표들과 주재원들이 다리 앞에 모인 것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울분 때문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지난 24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대회에 참석, 방북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이다.


당시만해도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오늘 모인 주재원들의 얼굴에서는 '역시나'라는 피로감만이 엿보였다. 근로자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임동 개성 대표는 "방북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개성공단 정상화를 다시 한번 촉구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며 "대표들이 아닌 근로자 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집결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기업 대표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지만 이날 모인 대부분이 주재원과 본부장 출신이었다. 그들은 개성공단 기업 대표들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였다. 이 대표는 "비대위에서 대체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그들이 기업 오너인 만큼 이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남북한 정부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개성공단은 우리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일터였다"며 "두달 전만 해도 남한 근로자와 북한 근로자가 어울려 행복하게 일했는데, 누가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 정부 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에도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번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개성공단 주재원들은 이 대표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이 휴직 상태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권고사직 처분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혹시나 개성공단이 정상화될까 하는 기대에 다른 일을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들을 써주려는 남한 기업들도 거의 없다.


이 대표는 "9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일해왔던 주재원들이 지금와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겠느냐"며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임원급인 본부장들은 상황이 더 난처하다. 본인의 입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주재원들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 때문에 두 배로 힘들다는 것. 박경선 지에스용인 법인장은 "법인장들과 주재원들의 경우 생업이 걸려 있어 더욱 힘든 상황"이라며 "도의적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주재원들은 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생산담당 직원은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높은데,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통해 들어오라는 뜻을 밝힌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자존심을 접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그런 제스쳐를 취했을 때는 유화책을 써야 하는데 정부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여전히 북측에 강경한 대응으로 나서고 있으며, 북한 역시 민간기구를 통한 방북만을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복귀시간인 10시가 가까워 오자 바리케이트 앞에서 망설이던 주재원들이 하나 둘 바리케이트를 넘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재원 수십여명이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는 침묵 집회를 벌였다. 하지만 그들의 조용하지만 간절했던 집회에 화답하는 소리는 그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이지은 기자 leez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