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삶과 죽음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에 그 묘미가 있다. 누구도 무병장수하는 건강한 삶을 자신할 수 없고, 당장 내일 사고를 당해 죽지 않으리라고 호언장담 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규칙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 찾아 올 지 모르기에 더욱 두렵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늘 곁에 두고 생활하지는 않는다.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여기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찾아올 '죽음'이라는 손님을 이들은 경건히 기다리고 있다. 뿌리치지도 않고, 눈물 짓지도 않는다. 그저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뜨거운 안녕'(감독 남택수)은 죽음을 앞두고 이별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원을 배경으로 한 휴먼드라마다. 나이롱 시한부 환자들과 트러블 메이커 아이돌 가수가 펼치는 인생 마지막 꿈을 향한 도전을 담아냈다.
'호스피스'란 중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 순례자나 여행자가 쉬어가던 휴식처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프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고 필요한 간호를 베풀어 준 것이 그 효시가 됐다. 현재는 불치질환의 말기 환자 및 가족에게 가능한 한 편안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총체적인 돌봄(care)의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뜨거운 안녕' 속 호스피스병동에는 우락부락한 인상의 전직 조폭 뇌종양 환자(마동석 분)와 나이트클럽 알바를 뛰는 간암 말기 가장(임원희 분)을 비롯해 까칠한 군기 반장(백진희 분), '도촬' 전문 백혈병 꼬마(전민서 분) 그리고 아들을 위해 동화책을 쓰는 힘찬 엄마(심이영 분)가 머물고 있다. 이 곳에 폭행 사건으로 봉사명령을 받은 아이돌가수 충의(이홍기 분)가 들어오면서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남택수 감독은 방송 프로듀서 출신이다. 오랜 시간 방송계에서 일해 온 그는 영화 감독으로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사람들에게 열정과 아름다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특히 '뜨거운 안녕'은 감독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는 데에 깊은 의미가 있다. 그는 실제로 포천에 위치한 모현 호스피스 병원에서 수년 간 봉사활동을 해왔다. 온 몸으로 체험한 병동생활은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겼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스크린에 첫 데뷔한 이홍기는 극 초반 관객들에게 다소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캐릭터에 스며들며 일각의 날선 시선을 비껴갈 수 있었다. 특히 그가 맡은 충의는 아이돌 스타로, 이홍기는 실제 직업이 밴드 보컬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노래는 물론 드럼 기타 키보드까지 다루며 자신의 실력을 아끼지 않고 발휘했다.
'악기 연주'라는 난관에 부딪힌 배우들 사이에서 의외의 복병은 마동석이었다. 그는 학창시절 밴드 활동을 한 바 있으며, 촬영 당시 드럼 스틱을 쥐자마자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자랑했다는 후문이다. 임원희는 난생 처음 전자 기타를 잡아봤지만 열심히 연습에 매진했고 지금은 기타 연주가 취미가 됐다. 이 같은 배우들의 숨겨진 노력은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었고,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감동은 배가 됐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은 '진정성'과 '재미'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마동석은 언론시사회 당시 연기를 하며 느꼈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이들은 '죽음'이라는 소재를 무겁지 않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쳤다.
'뜨거운 안녕'은 때때로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이나, 민감한 소재를 어렵지 않게 그리기 위해 다소 표현이 오그라드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살아 숨 쉬는 캐릭터나 짜임새 있는 극 전개, 인간미 넘치는 영상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탄생했다.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뜨거운 안녕'은 후반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요소가 포진해 있지만 결말은 의외로 담백하다. 차갑고 무거운 소재를 따뜻하게 그려낸 수작. 개봉은 오는 30일.
유수경 기자 uu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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