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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성북동 '최순우 옛집' 서재에서 '혜곡'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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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스토리]성북동 '최순우 옛집' 서재에서 '혜곡'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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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과 정신이 유전되는 도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 소통하는 도시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


개발연대의 참상 혹은 문화 유산에 대한 무관심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금도 멸실, 훼손되고 있다. 근세기 이후 서울은 여전히 거대한 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진절머리 나는 현장에 무지와 몰이해, 거짓된 욕심, 잘못된 법규와 제도, 관행들이 가득하다. 그나마 한국판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효시로 기록된 '최순우 옛집'의 보존은 작은 위안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문화유산의 진정한 상속자는 참여할 줄 아는 시민이며, 문화재를 지키는 시민의 힘이 왜 필요한 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은 혜곡 최순우 선생(1916∼1984년)이 1976년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혜곡은 제 4대 국립 박물관장을 역임한 인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박물관 발전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혜곡은 성북동 집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의 저술을 집필하기도 했다. 옛집 서재에 놓여 있는 책상과 안경이 고즈넉히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혜곡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년도는 1930년대다. 당시 지어진 주택들이 일본식 주거 양식이 많이 가미된 것과는 달리 최순우 옛집은 전통에 충실하고 있다. 집 형태는 '튼 ㅁ' 형태로 'ㄱ'형의 안채와 'ㄴ' 형의 사랑채가 합쳐진 모양이다. 또한 다각선을 이루는 모서리 두곳이 트여 있다. 건축 당시 서울, 경기 지방의 가장 전형적인 주거 형태를 취한다. 대지 120평, 건평 30 규모로 아담한 살림집이다.

[서울스토리]성북동 '최순우 옛집' 서재에서 '혜곡'을 만나다

집은 전체적으로 북문에 동향이다. 대지 형상이 북동쪽으로 열려 있는 까닭이다. 중정에는 작은 화단을 갖췄으며 화단 중심부에는 수령 130여년 된 향나무 한 그루가 세개의 가지로 곧게 뻗어 있다. 향나무 옆에는 나무 뚜껑을 덮은 우물이 놓여 있다. 돌축대를 쌓은 토방에서 우물과 향나무를 향해 낮게 엎드린 듯 드리워진 소나무 한 그루가 이채롭다. 목마른 용이 꼭 우물로 물을 마시러 온 듯한 형상이다.


당시 건축을 살필 겸 안채의 대청으로 들어서 이곳 저곳을 살펴도 주방과 부엌이 보이질 않는다. 재단법인 내셔널 트러스트의 송지영 학예사에 물으니 폐쇄했다고 한다. 주방은 혜곡이 기거하기 이전에는 안채의 동쪽 모서리에 있었다. 혜곡은 주방을 침실로 바꿔 겹 침실 형태로 사용했다. 대신 대청과 잇닿는 서쪽편으로 옮겼다. 2002년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혜곡의 집을 매입,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주방 공간을 막아서 지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최순우 옛집이 근대한옥으로서의 가치를 감안한다면 주방이 사라진 건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다. 혜곡이 변경해놓은 주방이라도 그대로 살렸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주택에 있어서 가장 중심 공간인 주방의 멸실은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스토리]성북동 '최순우 옛집' 서재에서 '혜곡'을 만나다


가장 이색적인 공간은 대지 남쪽에 펼쳐진 후원이다. 후원 앞 남쪽은 가파른 축대로 막혀 있으며 동쪽도 얕은 담장으로 차단돼 있다. 따라서 남쪽 후원은 최순우 옛집의 가장 후면을 차지하고 있다. 규모가 40여평 정도에 이른다. 전체 대지 규모를 감안하면 넓은 면적이다. 대신 아주 아늑하면서도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공간이다. 애초에 집을 지은 사람의 품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최순우 옛집의 초기 내력은 밝혀진 게 없다. 그런 면에서 스토리텔링의 한 부분이 유실된 듯한 느낌이다. 간혹 혜곡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 찾아와 옛 추억을 더듬고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최순우 옛집의 가치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시민의 힘으로 보호, 보존했다는데 있다. 최순우 옛집 보존은 2002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시작됨에 따라 2004년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순우 옛집이 지어진 일제 때 성북동 일대는 고급 별장과 문화재급 건축물이 들어섰으나 개발연대 동안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 한용운 선생이 기거했던 심우장이나 수연산방, 성락원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서울스토리]성북동 '최순우 옛집' 서재에서 '혜곡'을 만나다


개발은 항상 경제성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다. 그 때마다 보존과 훼손의 갈림길에서 항상 우리 사회의 지성, 상식이 저울질 당한다. 개발연대의 무지가 지금도 수시로 진행된다. 지난해 완공된 서울시청사만해도 그렇다. 초현대식 건물이 낡은 건물을 내리 덮치는 듯한 모습은 부조화의 극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정부 시절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정치가 문화를 어떻게 억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치스런 역사에 대한 증거인멸이 건물 하나 없애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여긴 문민정부의 행위가 얼마나 천박한지도 알게 된다.


그런 무지가 판치는 환경에서 공유의 정신이 실현된 '최순우 옛집'의 보존은 실로 특기할만한 부분이다. 한국에서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90년대 초반, 지역에서 특정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시민 성금모금 형태로 초기의 운동이 이루어졌다. 한국사회에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게 된 시기는 90년 중반 '그린벨트 해제 반대운동'이 계기다. 기존 그린벨트 지역 소유자들의 사유재산을 보장하면서 녹지공간을 보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모색하면서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이 제기된다.


90년대 그린벨트 보전운동은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출범으로 이어진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출범 이후, 영구 보전할 수 있는 시민유산 확보를 위한 활동과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내셔널트러스트법'제정활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최순우 옛집', '동강 제장마을', '나주 도래마을 옛집', '권진규 아틀리에', '연천 DMZ 일원 임야', '청주 원흥이 방죽 두꺼비 서식지'를 확보, 시민유산으로 보전 관리하고 있다.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관계자는 "현행 내셔널트러스트 관련 법안이 졸속으로 추진돼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 확보된 자산의 영구보전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규제로 인해 시민운동의 자율성이 상실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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