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우디 앨런은 거장 감독으로서의 책무 의식이나 부담감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의 신작 '로마 위드 러브'는 우디 앨런의 유럽 시리즈 전작들 중 가장 가볍고, 수다스러우며, 무엇보다 가장 관광엽서 같은 작품이다. 지난해 전세계 영화팬들을 매료시킨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모두가 환상에 빠질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곳곳에 넘친다. 특히 우디 앨런이 직접 연기한 오페라 감독 '제리'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압권이다.
'로마 위드 러브'는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있다. 각각 추억, 명성, 스캔들, 꿈을 주제로 한 이 에피소드들은 로마라는 이국의 도시를 가장 잘 설명해줄 단어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여전히 말이 많지만 사랑스럽고, 애늙은이처럼 굴지만 다소 철이 없다. 무엇보다 트레비 분수, 포폴로 광장, 바티칸 박물관, 캄파돌리오 광장, 그리고 로마 구석구석의 골목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영화 속 풍경은 관객들의 방랑 본능을 자극한다.
첫번째 이야기는 로마로 여행을 온 유명 건축가 '존'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꼭 닮은 건축학도 '잭'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잭은 존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때마침 잭의 여자친구도 남자친구와 이제 막 헤어진 친구 '모니카'를 집으로 부른다. 그러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잭은 여자친구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이 팜므파탈의 여인은 엘렌 페이지가 맡았는데, 약간의 허세와 얄팍한 지식이 오히려 이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다. 마치 권투시합 중계하듯 시종일관 이들의 관계에 훈수를 두는 '존' 역은 알렉 볼드윈이 맡았다.
두번째 이야기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레오폴도의 이야기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파파라치들의 감시를 받는 대스타가 됐다. 파파라치의 어원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으니, 우디 앨런이 이를 놓칠 리 없는 것이다. 속옷의 취향, 면도 방식, 아침 메뉴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피곤한 생활 속에서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유명인이 누리는 특혜다. 인기식당에 미리 예약을 할 필요가 없고, 미모의 여인들이 그와 하룻밤을 같이 하기 위해 줄을 선다. 평범한 소시민과 유명인의 삶, 뭐가 더 좋을까라는 질문에 우디 앨런은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로마로 신혼여행을 온 신혼부부는 세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중요한 손님들과의 미팅을 앞두고 아내는 미용실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촬영을 하고 있던 유명 배우를 만나 그의 꼬임에 빠져 함께 호텔로 간다. 남편은 숙소에서 아내를 기다리다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온 콜걸을 만나고, 그 장면을 친척들에게 들킨다. 당황한 남편이 콜걸을 아내라고 속이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우디 앨런과 호흡을 맞췄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섹시한 데다 백치미까지 있는 콜걸로 등장해 무한한 매력을 발산한다.
마지막은 가장 위트가 있는 에피소드다. 로마로 여행을 하는 이들의 로망이 현지에서 괜찮은 사람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이리라. 여기에 그 꿈을 이룬 커플이 있다. 거짓말처럼 '헤일리'는 이탈리아에서 자신에게 길을 가르쳐준 '미켈란젤로'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앞둔다. 그러나 딸의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헤일리의 부모가 이탈리아로 건너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헤일리의 아빠이지 은퇴한 오페라 감독인 '제리'는 평생을 장인으로 살아온 미켈란젤로의 아버지가 엄청난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샤워를 하고 있을 때에만 발휘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디 앨런이 연기한 '제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는데...
'로마 위드 러브'에서의 로마는 사랑에 빠지기 쉬운 곳이다. 짜릿한 일탈도 꿈꿀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우연이 겹치지만 이야기들이 서로 만나지는 않는다. 원제는 'To Rome with love'인데 영화를 통해 우디 앨런은 이탈리아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던 환타지를 대리만족시켜 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기분 좋은 영화다.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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