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다녀온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글쓴이도 군대 시절 나쁜 기억만 있진 않다. 즐거운 추억 가운데 하나는 사격과 관련한 일이다. 글쓴이는 전방 ○사단 신병교육대 조교로 근무했다. 그냥 조교가 아닌 사격술이 뛰어난 1급 조교였다. 자동화사격장에서 열린 사단 직할대 대항 사격대회에 신병교육대 대표로 출전해 우승한 일은 지금도 부대 선·후임병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가 되곤 한다. 당시 실력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글쓴이가 중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 고향인 부산에는 공기총 사격장이 여기저기 있었다. 글쓴이의 취미 가운데 하나는 사격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은 조준선 정렬이니 영점사격이니 하는 사격 관련 용어와 기술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점수가 좋지 않더라도 탄착군이 형성돼 있으면 내심 쾌재를 부르곤 했다. 요즘은 화약총은 그렇다 치고 공기총 사격장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격은 생활체육으로 충분히 훌륭한 종목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글쓴이가 사격 얘기를 끄집어낸 까닭은 지난달 13일 체육 관련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임명된 박종길 전 태릉선수촌장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박종길은 1970~80년대 한국 사격의 간판 스타였다. 그 무렵 한국 스포츠의 경기력 수준이나 국제 대회 성적을 고려하면 2012 런던올림픽 사격 2관왕 진종오에 버금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박종길은 해병대 장교 시절 사격에 입문했으며 1973년 대위로 예편한 뒤 사격에 더욱 전념해 1978년 제8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속사권총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때 박종길의 금메달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대회신기록(593점)인데다 한국 선수단이 기록한 사격 종목의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6개나 획득했다. 사격 종목 닷새째까지 금메달이 나오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사격 대표팀은 박종길의 금메달로 큰 짐을 덜 수 있었다.
시상대에 선 박종길은 은메달리스트인 북한의 서길산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시 남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런 시절 박종길의 사격 금메달은 의미가 각별했다. 북한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소구경 복사에서 이호준이 금메달을 따는 등 사격 종목에 관한한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박종길은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선 스탠다드 권총에서, 1986년 서울 대회에선 속사권총 단체전에서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어 아시아경기대회 3연속 금메달이라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개인전 2연속 금메달도 당시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70년 제6회 방콕 대회와 1974년 제7회 테헤란 대회에서 2연속 2관왕에 오른 수영의 조오련, 1966년 제5회 방콕 대회와 1970년 제6회 방콕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복싱의 김성은 그리고 1970년 대회와 1974년 대회 포환던지기에서 연속해 정상에 오른 포환던지기의 백옥자 등으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박종길이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마지막으로 금메달을 딴 1986년 대회 때 나이는 40세였다. 사격이 선수 생활이 비교적 긴 종목이긴 하지만 박종길은 악명 높은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에서 후배들을 따돌리고 1위로 정상에 오를 정도로 강한 체력을 선보였다.
박종길의 사격 인생에서 빛나는 또 하나의 훈장은 1978년 태릉에서 열린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센터파이어 권총에서 소총 소구경 3자세의 서장운, 10m 공기 소총 단체전의 박남순 김영순 유주희와 함께 주최국의 체면을 살리는 은메달을 명중한 것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소구경 복사의 이은철과 여자 공기소총의 여갑순이 한국 사격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훨씬 전의 일이다. 한국은 71개국 1천5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스포츠 팬이라면 ‘축구 황제’ 펠레가 브라질 체육부 장관을 지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육상 남자 100m와 200m 금메달리스트인 발레리 보로조프는 우크라이나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현역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인 출신이 체육 관련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모습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박 차관의 취임을 계기로 사격이 한 단계 더 발전해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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