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더 빛나는 윤리경영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지난해 하반기 교보생명은 은행을 통한 '즉시연금'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당시 즉시연금은 자산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던 상품이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자산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교보는 과감하게 이 시장에서 손을 뗐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몰라도 먼 미래를 내다볼 때 회사 뿐 아니라 고객에게도 손해가 불가피하다"고 즉시연금 판매를 접은 배경을 설명했다.
신 회장의 '윤리경영 리더십'이 진화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전 직원은 최근 회사와 '직무윤리실천다짐서약'을 맺었다. 고객에 대한 윤리 등 직원이 지켜야 할 행동 강령을 회사와 약속하는 내용이다. 신 회장이 주도했다. 취임 이후 13년차를 맞이한 윤리경영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보험업의 경영환경 속에서 그가 윤리경영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윤리경영만이 회사 뿐 아니라 고객, 투자자 모두에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이득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임원회의 석상에 한쪽 다리가 짧은 향로를 들고 온 적이 있다. 그러면서 "각각의 다리(모든 이해 관계자) 길이가 같지 않으면 결국 향로(기업)는 쓰러지고 만다"고 말했다. 윤리경영의 지향점을 한쪽 다리가 짧은 향로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교보의 의사결정시스템도 변화하고 있다. 교보생명에선 '사장 위에 회장, 그 위에 빅 보스인 비전이 있다'는 말이 통용된다. 신 회장은 이와 관련해 "내가 내린 지시사항이라고 해도 비전에 맞지 않는다면 따르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신 회장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고객이다. 올 회계연도 시작 메시지를 통해 "고객 서비스를 '잘하는' 회사가 아닌 '가장 잘하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험업계가 위기에 봉착한 지금, 그의 '윤리경영' 가치가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귀추가 모아지고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