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허수주문 내고 취소로 주가 올려
끼리끼리 주식 사고 팔고 거래량 늘려
해마다 늘어난 주가조작..근절 왜 어렵나
개인 유혹 빠지기 쉽고..'솜방방이' 처벌도 강화해야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회사를 그만둔 박모씨(54세)는 퇴직금을 갖고 최근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여유있는 은퇴 생활을 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섣불리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는 것보다 그나마 수익이 나을 것으로 기대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증권가에 인맥도 넓어 원금을 까먹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투자 초반 운좋게 수익을 올려 하루에 수백만원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거래할 수록 손실을 보는 종목은 늘어났고 한달새 2000만원을 날렸다. 그러다 박씨는 인터넷 주식투자 까페에 가입하면서, 소위 전문가를 만났다.
매수 종목은 물론 정확한 타이밍까지 자신있게 추천하는 모습을 보고 원금 회복의 꿈을 꿨다. 일주일만에 100%를 넘게 올랐다는 성공사례는 내 얘기처럼 들렸다.
전문가가 메신저를 통해 지시하면 곧바로 매수와 매도주문을 냈다. 주가가 올랐지만 더 오르기를 기다렸고, 주가가 떨어지면 추격 매수까지 했다.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투자금액은 더 커졌다.
박씨의 믿음은 머지않아 물거품이 됐다. 1억원 가까이 투자한 종목이 상폐종목에 지정됐다. 그나마 일찍 손절에 나섰지만 은퇴자금은 반년만에 절반이 사라졌다. 그가 산 종목은 말로만 듣던 '작전주'였다. 그 전문가는 주가조작으로 적발됐다.
그는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전문가를 믿었지만 이렇게 허위로 주식을 추천할지는 몰랐다"며 "어디가서 하소연을 해봐야 답답한 마음을 풀지 못한다"고 고개를 떨궜다.
주가조작은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이뤄진다. '작전'은 암암리에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일부 추천 종목 가운데 주가가 오르는 경우도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작전주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최근에도 모 주식전문 방송에서 활동하던 투자전문가 전모씨가 주가조작으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를 추종하던 많은 투자자들은 수십억원대 투자 손실을 입었고, 이 소식은 주식시장을 크게 출렁이게 했다. 처벌이 가능하더라도 이들이 입은 손실에 대한 배상은 막막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건수는 모두 243건으로 전년 209건 대비 16.2%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시세조종 행위는 7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부정거래 행위 55건, 미공개정보이용 행위 39건으로 나타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가조작?=주가가 오르라는 마음에 체결이 어려운 높은 가격에 대량의 호가를 주문하는 경우, 과연 처벌 해야할까?
주로 동전주를 상대로 거래량을 급격히 늘거나 대량 고가 매수 주문을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의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허수 주문으로 주가가 올라 수익을 냈다면 주가조작이다. 대량 주문을 내고 주가가 오르면 보유 주식을 팔고, 대량 주문은 취소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해당 종목에 호재가 있어서 움직일 수도 있으나 상당부분은 허수주문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가격이 낮은 동전주 투자를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활발한 거래를 보여주기 위해서 지인과 주식 물량을 서로 매매하는 거래 역시 주가조작이다. 이는 통정거래로 호가를 조금씩 조금씩 끌고 올라가는 현상을 노린다.
작년초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북한 영변 경수로가 폭발해 고농도 방사능이 유출됐다는 루머를 퍼뜨린 뒤 주식을 사고팔아 3000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일당이 잡히기도 했다. 대표적인 허위사실 유포 사례다.
이외에도 상장폐지의 사유가 되는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이후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회사 임원이 미리 보유주식을 매각하는 경우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솜방방이 처벌도 작전주 부추겨=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형량은 최고 징역 15년이지만 실효성은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시세조종(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범죄는 형량이 최고 징역 15년에 달한다.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해 300억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취하면 일반 사기범죄보다 가중 처벌돼 징역 9∼15년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처벌 사례는 드물다. 작년 한국거래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시세조종을 포함한 불공정거래에 대한 검찰 기소율은 2009년 80.9%에서 2010년 76.8%, 2011년 34.9%로 해마다 낮아졌다.
적발은 늘었지만 정작 기소되는 사례는 적다보니 모방범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물론 부당이득까지 환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금융위와 금감원, 국세청이 주가조작 범법자를 엄단할 수 있도록 조사와 적발, 처벌의 전단계에 걸친 제도개선 시행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작전주, 그 치명적인 유혹=작전주가 주식투자 초보에게만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단기간 높은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솔깃한 제안이다. 전문가들은 작전세력은 이 같은 투자자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노린다고 설명한다.
말콤 베이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에 따르면 주식투자자들은 자본금이 적거나 배당을 하지 않는 기업이나 부실 기업, 높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에 더 관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가 어렵고 평가 자체가 주관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즉 투자자 주관적인 판단이 상당부분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들어 작전 방법은 보다 전문화되고 있다. 작전주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부터다. 이들은 전문가를 동원하거나 시장에 널리 알려진 테마주를 갖고 주가조작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전문가의 신뢰나 테마주의 주가 등락을 미끼로 '나만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를 노리는 것이다.
증권전문가의 증권방송을 이용한 부정거래는 2011년 4건에서 2012년 12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또 정치테마주에 대해 불공정거래 42건을 적발, 총 59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27명의 혐의자는 검찰에 고발 통보됐다.
특히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언론사를 통해 오보를 내거나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활용해 허위 소문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더욱 허위사실을 유포한 뒤 금융당국에 조사를 의뢰한다며 기업을 협박해 거액을 뜯어낸 경우도 적발되기도 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작전 종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투자를 하는 투자자의 잘못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단기간 일확천금을 노려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것은 전적으로 투자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주가조작에 대해 금융당국에서 꾸준히 적발해왔지만 주가조작 세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모 아니면 도'식의 투자자 욕망과 기대심리가 변하지 않는 이상 주가조작은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