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저녁꺼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그 말을 듣고 돌아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 중에서
■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살았던 세상의 질곡(桎梏)을 지금과 동일시하는 건 어리석다. 하지만 추수(생산)가 없고 주민등록(민적)이 없는 삶이 당하는 고통은 현재형이다. '푸어(poor)'라는 이름이 붙는 절망이 끊이지 않고, 다문화가정이나 탈북노동자와 같은 이들의 소외와 설움도 여전히 만만찮다. 요즘처럼 '나눔'이나 '상생'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는 때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외침이 크면 클수록, 빈부차가 극심해지고 경제 민주화가 왜곡되어가는 세상의 맨살이 보인다. 만해는 비판의 날을 세운 뒤, 이렇게 말한다.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이다." 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사회적 기틀이며 민주주의와 정의의 보루들이, 사실은 권력의 귀신과 돈의 귀신에게 절하며 피우는 향불에 불과하다는 단언이다. 윤리, 도덕, 법률을 돈과 권력에 팔아먹는 일이 그 시대만의 일인가? 만해가 나를 깨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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