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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무한 디지털 기억시대, 보존과 삭제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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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무한 디지털 기억시대, 보존과 삭제의 지혜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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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저장기술에 의해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능력의 한계를 극복한 '완전한 기억'이 우리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엄청나게 증대된 디지털 기억능력을 적절히 다룰 원칙이 없어 곳곳에서 다양한 부작용과 가치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신기술로 인해 개인들의 정보통제권이 약화되고 있다는 전 세계적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잊혀질 권리'와 같은 디지털 기억능력을 통제하는 권리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무제한적인 디지털 기억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가치들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지혜가 SNS시대의 새로운 미덕으로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모든 디지털 기억들이 비트열로 환원돼 동일한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맥과 상황에서 다양한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기억은 인류에게 소중한 역사적 기록이자 디지털 유산이 되지만 또 다른 기억은 개인의 영혼과 육체를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다.  공인이 아닌 개인에 관한 사적인 내용을 담은 디지털 기억의 경우 기타 법률에 의해 명시되거나 표현의 자유 등 기타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얼마나 기억될지에 대해 정보주체에 선택권과 통제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도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디지털 기억은 수사기관이 범행을 입증하는 법적 증거가 되기도 하고 피의자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모 탤런트 고소사건에서는 카카오톡 서버에 기억돼 미처 지워지지 못한 메시지 내용이 사건의 향방을 결정할 주요 증거가 되고 있다. 디지털 기억은 법에서 요구하는 기간만 유지돼야 한다. 특히 통신메시지는 더 제한적으로 기억돼야 하며 통신제한조치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돼서는 안 된다.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디지털 유산과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들의 기억은 공공자산이자 집단기억으로 후세에 전달돼야 한다. 정보과잉이 오히려 올바른 현실인식과 판단에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듯, 기억의 과잉이 후세들의 올바른 역사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사회성원들의 공감대에 기반해 기억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결정하는 원칙과 절차를 수립해 기록을 수행해야 한다.


개인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들은 정서적 가치를 갖는 소중한 개인의 추억이지만 최근 프리챌 사례처럼 서비스가 종료되면 모든 게시물이 삭제돼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서비스 종료에 대한 합리적인 사전 고지방법과 충분한 백업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또 얼마 전 나만의 기억저장소를 표방했던 에버노트가 해킹당했던 것처럼 온라인 기억서비스가 해킹당해 기억이 삭제되거나 비공개 기록이 유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처럼 개인의 기억에 대한 보호책임을 기업에 부여함으로써 기억이 안전하게 보존됨을 보장하고 함께 나누고픈 기억, 나만 기억하고픈 기억, 나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권한과 기능이 제공돼야 한다.


무한 디지털 기억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얼마 동안 기억하고 무엇은 기억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균형 잡힌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이 같은 원칙은 후손들에게 역사적 기억과 디지털 유산을 물려줄 책임과 법에 명시된 기간 동안 특정 기억을 유지할 의무,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소중한 기억을 강제로 삭제당하지 않을 권리, 자신의 기억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받을 권리, 자신에 대한 기억을 통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에 근거해야 한다.


이 원칙만이 디지털 기억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기억에 질식당하지 않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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