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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모의 최대성 장군 서세 416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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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해섭 기자]


"구국충절의 숭고한 정신 되새겨"

보성군, 모의 최대성 장군 서세 416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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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와 의향의 고장 보성군(군수 정종해)은 '모의 최대성 장군 서세 416주기' 를 맞아 장군의 보국안민 정신과 구국충절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추모행사를 가졌다.


군에 따르면 지난 7일 보성향교청년유도회(회장 김재도) 주관으로 득량면 충절사에서 김승남 국회의원과 기관단체장,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군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엄숙히 거행했다.

정종해 보성군수는 추모사에서 “장군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가 간직하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시대적 가치이며 정신적 지표이다”면서 “의향 보성의 자랑스러운 후예로서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려 온 군민의 힘과 지혜를 모아 전국에서 가장 잘사는 1등 보성을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모의장군 최대성 공은 서기 1553년(명종8년) 3월 7일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서 출생, 33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관, 첨정, 부정, 훈련원정에 올랐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막하 한후장으로 한산대첩 부산포 해전을 비롯한 거제, 옥포, 당항포, 함포, 웅포, 안골포, 가덕포, 고성경, 적진포 등 대소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렸다.


또한 정유재란 때에는 아들(언립, 후립), 동생(대민, 대영)과 사노두리, 갑술 등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수천 명을 영솔하여 남해안 일대 해전에서 20여 차례 크고 작은 수많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군은 1597년 6월 8일 보성 안치 대전에서 적군을 대파 도주하는 적장을 추격하던 중 숨어있던 적의 암탄에 맞아 득량면 군두에서 순절했다.


보성군은 경주최씨 문정공파 문중과 뜻을 같이하고 장군의 넋과 두 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충절사를 건립하였으며, 이곳에는 병첨을 비롯한 화살촉 등 장군의 유품이 50여점이 진열되어 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노해섭 기자 no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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