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시계아이콘02분 39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포럼부문' 그리스 영화 3편을 통해 본 '절망과 불안'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AD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세계 3대 국제영화제로 꼽히는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루마니아의 칼린 페터 네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차일드스 포즈(Child's Pose)’에 최우수작품인 ‘황금곰상’을 수여하며 17일(현지시간) 폐막했다. 2등상인 은곰상은 다니스 타노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감독의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An Episode in the Life of an Iron Picker)’에 돌아갔다.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은 영화를 선호해 온 베를린 영화제의 전통처럼 1·2위 수상작은 각각 루마니아의 부조리한 사법제도와 부정부패를, 그리고 병환에도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한 집시 가족의 가난과 비극을 다뤘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주제는 ‘재앙의 부수적 피해(The collateral damage of the catastrophe)’였으며 오랜 경제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세계 곳곳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그린 영화가 다수 소개됐다.


특히 올해 ‘포럼’부문(세계 각국의 독립영화 및 실험영화를 소개하여 신인작가 발굴에 기여하고 있는 부문) 초청작 중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 위기가 가장 극도로 표출된 그리스의 영화 세 편이 눈길을 끌었다. 크리스티나 코우초스피루·아란 휴즈 감독이 공동연출한 ‘투 더 울프(To The Wolf)’, 엘리나 프시코우 감독의 ‘더 이터널 리턴 오브 안토니스 파라스케바스(The Eternal Return of Antonis Paraskevas)’, 타노스 아나스토풀로스 감독의 ‘더 도터(The Daughter)’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온라인판은 최근호를 통해 현재 그리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사회적 구조조정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과 불안, 공포를 세 영화가 각각 다른 장르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크리스티나 코우초스피루 / 아란 휴즈 감독 '투 더 울프(To The Wolf)' 사진 :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픽션 영화인 ‘투 더 울프’는 세 영화 중 가장 암울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는 끝났다. 죽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하고, 모두가 살아갈 이유를 잃은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리스 서부 나프팍티아 지역의 산간 마을에서 살아가는 두 양치기 가정의 생활을 그렸다. 무너진 그리스 경제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핍에 익숙한 이들이지만 밀가루조차 사기 힘들 정도로 삶은 더욱 버거워졌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빚에 대해, 그리고 몇 푼 남은 돈을 담배와 맥주를 사는 데 쓸 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실제로 양을 치며 살아가는 이들을 배우로 기용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촬영됐으며, 실제 주인공들이 겪는 가난을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 휴즈 감독은 “이 영화는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그리스 양치기들의 마지막 세대를 담는 영화로 시작됐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위기는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엘리나 프시코우 감독 '더 이터널 리턴 오브 안토니스 파라스케바스(The Eternal Return of Antonis Paraskevas)' 사진 :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웹사이트



‘더 이터널 리턴 오브 안토니스 파라스케바스’는 그리스가 ‘잘 나갔던’ 과거와 비참해진 현재의 모습을 가상의 인물에 빗대 표현한 드라마다. 주인공 파라스케바스는 20년 동안 그리스에서 가장 시청률 높은 아침 TV쇼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그러나 시간은 흘러 시청률은 떨어지고 빚은 늘어만 간다. 궁리 끝에 주인공은 세상의 관심을 끌어 보려 ‘납치 자작극’을 벌이고 자신은 폐쇄된 고급호텔에 틀어박힌다. TV를 통해 자신의 사건 소식을 지켜보고, 자신의 과거 방송을 편집한 ‘히트작 모음’ DVD를 틀어보며 소일한다. 쓰러져 가는 호텔에서 홀로 화려한 과거를 추억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의 모습 그대로이며 과거 회상 장면 속 2001년은 공교롭게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했던 해다. 엘리나 프시코우 감독은 처음 각본 작업부터 ‘사회적 위기’를 주제의식으로 잡았다. 그는 “현존하는 위기와 정체성의 상실에 주목했다”면서 “한때 부유하던 이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이제 그리스에서 매우 흔해졌으며, 주인공의 몰락은 국가의 몰락을 투영한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타노스 아나스토풀로스 감독 '더 도터(The Daughter)' 사진 :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웹사이트



위기가 낳은 비극은 또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스릴러영화 ‘더 도터’는 14살짜리 소녀가 8살짜리 소년을 납치하는 내용을 그린다. 목재소를 운영하던 소녀의 아버지는 빚에 쫒겨 잠적했고, 소녀는 아버지와 동업자였던 소년의 아버지가 모든 원인이라고 믿으며 납치극을 벌인다. 영화 속에서는 아테네 거리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시위현장 등 그리스인들이 실제 겪는 사회적 긴장감이 묘사된다. 아나스토풀로스 감독은 “극도로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서 “지금 사회의 폭력과 긴장이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목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경제는 최소한 겉보기로는 탄탄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유럽연합(EU) 평균치를 웃돌았고 국민 1인당 평균소득도 유로존 선진국인 독일·프랑스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그리스까지 미치는 가운데 그리스 정부가 점차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부채를 숨겨 왔다는 것이 들통났고, 곧 그리스는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맞이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되자 곧 ‘디폴트(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고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며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구제금융의 대가는 가혹했다. EU·ECB·IMF의 ‘트로이카’ 채권단은 재정적자와 공공부채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고 그리스 정부로 하여금 긴축재정과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세금은 큰 폭으로 뛰었고 공기업 민영화와 인력감축, 시장규제 완화와 개방 등이 이뤄지고 있다. 연금과 최저임금이 삭감되고 국가가 책임지는 각종 사회안전망이 붕괴됐다. 실업과 가난 등 경제적 고통으로 자살이 크게 늘었고 거리는 연일 긴축정책에 분노한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슈피겔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오늘날 그리스 경제위기는 구제금융 지원, 긴축목표 데드라인, 시위의 지루한 반복으로 단순하게 보이겠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싸움이며 그리스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라고 지적했다.




김영식 기자 gr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