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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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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부문' 그리스 영화 3편을 통해 본 '절망과 불안'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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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세계 3대 국제영화제로 꼽히는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루마니아의 칼린 페터 네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차일드스 포즈(Child's Pose)’에 최우수작품인 ‘황금곰상’을 수여하며 17일(현지시간) 폐막했다. 2등상인 은곰상은 다니스 타노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감독의 ‘언 에피소드 인 더 라이프 오브 언 아이언 피커(An Episode in the Life of an Iron Picker)’에 돌아갔다.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은 영화를 선호해 온 베를린 영화제의 전통처럼 1·2위 수상작은 각각 루마니아의 부조리한 사법제도와 부정부패를, 그리고 병환에도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한 집시 가족의 가난과 비극을 다뤘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주제는 ‘재앙의 부수적 피해(The collateral damage of the catastrophe)’였으며 오랜 경제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세계 곳곳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그린 영화가 다수 소개됐다.


특히 올해 ‘포럼’부문(세계 각국의 독립영화 및 실험영화를 소개하여 신인작가 발굴에 기여하고 있는 부문) 초청작 중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 위기가 가장 극도로 표출된 그리스의 영화 세 편이 눈길을 끌었다. 크리스티나 코우초스피루·아란 휴즈 감독이 공동연출한 ‘투 더 울프(To The Wolf)’, 엘리나 프시코우 감독의 ‘더 이터널 리턴 오브 안토니스 파라스케바스(The Eternal Return of Antonis Paraskevas)’, 타노스 아나스토풀로스 감독의 ‘더 도터(The Daughter)’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온라인판은 최근호를 통해 현재 그리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사회적 구조조정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과 불안, 공포를 세 영화가 각각 다른 장르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크리스티나 코우초스피루 / 아란 휴즈 감독 '투 더 울프(To The Wolf)' 사진 :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픽션 영화인 ‘투 더 울프’는 세 영화 중 가장 암울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는 끝났다. 죽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하고, 모두가 살아갈 이유를 잃은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리스 서부 나프팍티아 지역의 산간 마을에서 살아가는 두 양치기 가정의 생활을 그렸다. 무너진 그리스 경제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핍에 익숙한 이들이지만 밀가루조차 사기 힘들 정도로 삶은 더욱 버거워졌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빚에 대해, 그리고 몇 푼 남은 돈을 담배와 맥주를 사는 데 쓸 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실제로 양을 치며 살아가는 이들을 배우로 기용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촬영됐으며, 실제 주인공들이 겪는 가난을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 휴즈 감독은 “이 영화는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그리스 양치기들의 마지막 세대를 담는 영화로 시작됐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위기는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엘리나 프시코우 감독 '더 이터널 리턴 오브 안토니스 파라스케바스(The Eternal Return of Antonis Paraskevas)' 사진 :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웹사이트



‘더 이터널 리턴 오브 안토니스 파라스케바스’는 그리스가 ‘잘 나갔던’ 과거와 비참해진 현재의 모습을 가상의 인물에 빗대 표현한 드라마다. 주인공 파라스케바스는 20년 동안 그리스에서 가장 시청률 높은 아침 TV쇼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그러나 시간은 흘러 시청률은 떨어지고 빚은 늘어만 간다. 궁리 끝에 주인공은 세상의 관심을 끌어 보려 ‘납치 자작극’을 벌이고 자신은 폐쇄된 고급호텔에 틀어박힌다. TV를 통해 자신의 사건 소식을 지켜보고, 자신의 과거 방송을 편집한 ‘히트작 모음’ DVD를 틀어보며 소일한다. 쓰러져 가는 호텔에서 홀로 화려한 과거를 추억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의 모습 그대로이며 과거 회상 장면 속 2001년은 공교롭게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했던 해다. 엘리나 프시코우 감독은 처음 각본 작업부터 ‘사회적 위기’를 주제의식으로 잡았다. 그는 “현존하는 위기와 정체성의 상실에 주목했다”면서 “한때 부유하던 이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이제 그리스에서 매우 흔해졌으며, 주인공의 몰락은 국가의 몰락을 투영한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영화제, 몰락한 그리스의 현재를 조명하다 타노스 아나스토풀로스 감독 '더 도터(The Daughter)' 사진 :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웹사이트



위기가 낳은 비극은 또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스릴러영화 ‘더 도터’는 14살짜리 소녀가 8살짜리 소년을 납치하는 내용을 그린다. 목재소를 운영하던 소녀의 아버지는 빚에 쫒겨 잠적했고, 소녀는 아버지와 동업자였던 소년의 아버지가 모든 원인이라고 믿으며 납치극을 벌인다. 영화 속에서는 아테네 거리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시위현장 등 그리스인들이 실제 겪는 사회적 긴장감이 묘사된다. 아나스토풀로스 감독은 “극도로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서 “지금 사회의 폭력과 긴장이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목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경제는 최소한 겉보기로는 탄탄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유럽연합(EU) 평균치를 웃돌았고 국민 1인당 평균소득도 유로존 선진국인 독일·프랑스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그리스까지 미치는 가운데 그리스 정부가 점차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부채를 숨겨 왔다는 것이 들통났고, 곧 그리스는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맞이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되자 곧 ‘디폴트(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고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며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구제금융의 대가는 가혹했다. EU·ECB·IMF의 ‘트로이카’ 채권단은 재정적자와 공공부채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고 그리스 정부로 하여금 긴축재정과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세금은 큰 폭으로 뛰었고 공기업 민영화와 인력감축, 시장규제 완화와 개방 등이 이뤄지고 있다. 연금과 최저임금이 삭감되고 국가가 책임지는 각종 사회안전망이 붕괴됐다. 실업과 가난 등 경제적 고통으로 자살이 크게 늘었고 거리는 연일 긴축정책에 분노한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슈피겔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오늘날 그리스 경제위기는 구제금융 지원, 긴축목표 데드라인, 시위의 지루한 반복으로 단순하게 보이겠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싸움이며 그리스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라고 지적했다.




김영식 기자 gr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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