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순혈주의 고집...품질로 지킨 '가문의 영광'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프랑스 럭셔리 업계의 1위 루이뷔통과 이탈리아의 프라다의 협공을 받는 에르메스는 176년 역사를 200년 이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속단은 이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가능성은 충분하다.에르메스그룹은 우선 기업이든 개인이든 외부인이 에르메스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다. 루이뷔통의 지분 확보에 깜짝 놀라 에르메스그룹 창업자 후손들은 지주회사를 새로 설립해 에르메스 가문의 독립경영 바탕을 마련했다.
에르메스 후손 52명은 보유지분의 50.2%를 지주회사 H51에 넘기고 후손들이 지분을 매각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전에는 1989년 설립된 '에밀 에르메스'라는 합자회사를 통해 그룹 지분과 의결권을 각각 62.79%와 73.96%를 소유하고 있었다. 지주회사는 후손들이 보유지분을 매각시 사들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지분보유에 따른 배당금의 3분의 1은 주주들에게 주고 나머지 3분의 2로 지분매수 등에 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6대손 40여명의 후손들 중 10여명이 에르메스 그룹과 재단 등 각 분야에 포진하는 등 똘똘뭉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의 다른 명품 그룹이나 가족기업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모다.
아울러 외부의 인수기도를 봉쇄할 수 있는 실탄도 충분히 쌓아놓았다. 에르메스 가문은 게랑,푸에쉬,뒤마 등 세 사위의 후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이 대대로 쌓은 자산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그렇지만 눈이 튀어날 정도의 부자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포브스는 지난해 기준으로 가문대표 역할을 한 베르트랑 푸에쉬 '에밀에르메스' 회장 일가의 재산을 122억 유로로 프랑스 4위로 평가했다. 게랑이나 뒤마 역시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력은 상상 이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에르메스 브랜드의 생명이자 그룹의 존속기반인 품질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 긍정적이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에르메스가 장구한 세월동안 생존한 비결로 "탁월한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그것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에르메스는 대량생산과 조립라인,기계화를 철저히 거부해왔다. 한 장인이 한번에 한 제품만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느질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340여명의 장인이이 1세기이상 하던 똑같은 방식대로 '예술품'을 만들고 있다는 후문이다.이는 엄격함과 비전, 창의성이라는 에르메스 문화의 진수다.그렇기에 켈리백과 버킨백,스카프가 수백만원이나 나가지만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에르메스는 또 2008년 에르메스재단을 설립해 장인정신과 장인의 기술을 보존과 전승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재단은 수공예품의 복원과 희귀 장인제품의 전시지원,장인의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 제고와 사업화 지원 등 세가지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파트리크 토마 CEO는 지난 2011년 8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에르메스는 6대가 흘렀어도 같은 가문이 경영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어떤 기업이 갖지 못한 뭔가를 부여했다"면서 "이는 우리가 루이뷔통의 모기업인 LVMH와 싸우는 게 단순한 경제전쟁이 아니라 문화전쟁임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에르메스의 품질은 2006 고인이 된 장루이 뒤마의 아들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라는 출중한 인물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는 에르메스 그룹의 전체 디자인을 책임진 '아트 디렉터'(art director)이자 재단 대표다. 그는 최고운용책임자(COO)이자 오는 5월 공동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악셀 뒤마의 사촌이다. 악셀뒤마가 전면에서 경영 사령탑을 맡는다면 피에르는 뒤에서 품질을 책임지는 모양새다.
그는 잘 준비된 디자이너다.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의 유명한 실크제조 가문인 라티 가문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염색과 직조과정을 몸에 익힌 인물이다. 그는 장인정신과 예술성을 배양하는 게 주력사업인 에르메스재단 대표로 '에르메스의 사원의 수호신'으로 통한다.탁월한 디자이너를 조율하면서 에르메스 제품 전체의 품질을 관리하지만 전문은 실크제품이다.
그렇다고 악셀뒤마가 명품 문외한은 전혀 아니다. 그는 14살에 인턴으로 에르메스에 입사했다가 유명한 그랑제꼴 시앙스포를 졸업하고 BNP 파리바 은행 북경과 뉴욕지점에서 총 8년간 외도했다.그렇지만 1993년 에르메스에 다시 합류해 20년간 경영일선에서 뛰며 잔뼈가 굵었다.
피에르 알렉시 뒤마와 악셀뒤마는 에르메스 성공비결인 창의성과 상업성을 이끄는 쌍두마차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전통과 품질,인재 등 삼요소가 가져온 결과는 좋았다.매출실적이 웅변한다.금융위기가 발생한 첫해인 2008년에 매출이 전년대비 9.6% 신장된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에는 8.5%,2010년에는 25.4%2011년에는 18.3%나 매출이 증가했다.2011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8억4120만 유로와 8억8520만 유로였다. 영업이익은 무려 32.5%나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9월 말까지 매출액이 22.7%나 증가한 만큼 연간 실적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글로벌 경기침체속에서도 아시아(24%),프랑스(13%),유럽(18%),미국(11%)에서 고루 매출신장을 보였다.상품도 가죽제품(11%)과 기성복(21%),실크제품(14%),향수(13%) 등이 두 자리 숫자의 신장률을 보였다.
토마 CEO는 지난 29일 파리에서 열린 남성패션쇼에서 "지난해 환상적인 결말을 맺었다"면서 연간 매출액이 13% 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에르메스가 앞날이 탄탄대로를 걸을 지는 미지수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CEO가 지분확대를 통한 에르메스 인수합병의 야욕을 완전히 접었는지는 알 수 없다.지분 매각이 금지돼 있다지만 가문 일원중 지분을 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고인인 장루이 뒤마의 사촌이자 가문 합자회사 베르트랑 푸에쉬의 동생이며 가문의 최대 단일주주인 니콜라 푸에쉬의 행보가 변수다. 그는 단독으로 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르노와 합작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게다가 루위비통과 프라다 등 경쟁업체들은 신흥시장이자 에르메스가 공략시장으로 삼고 있는 중국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도 성장을 제한할 요소다. 4륜마차를 끄는 말처럼 에르메스 후손들이 앞으로 200년,300년 동안 글로벌 명품 시장의 선두주자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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