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 칼럼]다산과 정조와 청문회

시계아이콘01분 43초 소요

[데스크 칼럼]다산과 정조와 청문회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AD

조선이 500여년간의 역사를 끝낸 것은 1910년 이른바 경술국치라고 불리는 한일 강제 병합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생명체의 사실상의 소멸, 아니 최소한 그 사멸의 시작은 1800년 6월부터였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1800년 6월의 보름간 두 인물에게 일어난 불행과 좌절이야말로 그 두 사람의 불운을 넘어서 조선의 불행, 민족의 불운이었으며 조선의 죽음의 시작이었다. 바로 정조의 죽음,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좌절이었다.


1800년 6월, 천주교에 연루되고 집권층인 노론 세력의 견제로 벼슬을 내놓고 고향인 남양주 마재에 내려와 있던 정약용은 평생 은거하며 학자로서의 삶을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6월12일 정조가 한서(漢書)를 10질 보내온다. 그 책들 속에는 사마천의 '사기'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정조는 '사기'를 통해 다산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일 것임을, 그럼으로써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었다. 정조와 다산, 두 사람의 인연을 '풍운의 만남(風雲之會)'이라고 했듯 다산은 달밤 아래서 15년간 일심으로 움직였던 철인군주 정조와 함께 조선의 부흥을 위해 가시밭길 같은 정치의 현실에 다시 뛰어들 각오를 다진다. 그러나 운명은 두 사람에게 가혹했다. 정조는 다산에게 책을 내려보낸 그 다음 날부터 몸에 종기가 나면서 앓아눕더니 허망하게도 보름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나이 불과 48세였다. 다산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한양으로 달려가 정조의 시신이 누워 있는 창덕궁 앞에서 통곡한다. 오열하는 그의 어깨 너머로 저 멀리서 아마도 희미하게 조선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다산의 정치적 생명은 끝나고 말았다. 18년간의 유배를 통해 방대한 저서를 남겼고 그래서 학자로서의 황금기를 일굼으로써 다산은 학문의 성취를, 조선은 뛰어난 학자를 얻었지만, 다산은 현실을 잃었고, 조선은 갱생과 부흥의 생명력을 잃었다.


귀양에서 돌아와 두물머리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쓸쓸히 여생을 마친 다산. 그는 사후에 더할 수 없는 영광의 자리에 오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산에 대한 찬미와 헌사는 그를 저 높은 곳으로 올려놓고 있다. 마침 다산 탄생 250주년이었던 작년은 특히 어느 해보다 다산에 대한 기념과 조명이 쏟아졌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숱한 일들이 그렇지만, 다산에 대한 기념과 찬사에서 나는 풍요 속의 빈곤을 본다. 그건 마치 지금의 교회가 예수 없는 교회이며 불교가 부처 없는 불교이듯이 대학의 수많은 다산 기념관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다산 없는 다산 기념관의 공허함을 보게 된다. 그런 공허함의 한편에는 특히 공직자들의 넘쳐나는 다산에 대한 찬사와 흠모의 변들이 있다. 과거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을 듯한 어느 대통령이 '목민심서'를 애독한다고 해서 실소를 자아낸 바도 있었지만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목민심서'는 일종의 성경과도 같은 지위에 올라 있다. 아마도 곧 임명될 총리나 장관들, 고위공직자들 중에도 적잖은 이들이 목민심서를 애독한다고 할 것이며 또 다산을 얘기할 것이다.


다산을 닮겠다는 뜻, 그건 가상하다. 다만 다산을 얘기하고 목민심서를 말하기 전에 다산의 저작들의 제목에 담긴 다산의 울분과 좌절을 먼저 생각해보기 바란다. 왜 '목민의 서'가 아닌 목민의 '심서(心書)'인지를, 왜 경세의 방도를 당대가 아닌 후세에 남긴다고 해야 했는지를(經世遺表), 왜 형벌을 집행함에 있어 삼가고 삼가는(欽欽) 마음이어야 한다고 했는지(欽欽新書)부터 되새겨보기 바란다. 그 좌절과 비통과 울분, 철저한 경민(敬民)의 마음을 자신이 갖췄는지부터 부디 살펴보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국회 청문회 이전에 스스로 거쳐야 할 인사 청문회가 돼야 할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